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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은 끝났는데 구속이 되지 않았다.
왜 울었는지 이유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니, 그때에도 이유는 알지 못했다.
유죄라는 좌절감?
(무죄로 풀려날 거란 기대도 없었으면서)
미래에 대한 두려움?
(무슨 일이 닥칠지도 몰랐으면서)
구속되지 않았다는 안도감?
(어안이 벙벙하긴 했다)
슬퍼서? 놀라서? 당황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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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운명과 저자의 운명은 별개라서, 세상에 한번 내놓은 글을 도로 주워담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번에 썼던 글이 제 손에서 멀어진 다음부터 저는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께름칙한 기분이었고 서툰 변명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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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다. 몸의 접혀진 부분마다 송골송골 땀이 맺힌다. 벽에 늘어붙은 채로 글씨를 끼적인다.
독일 Aachen발 편지는 8월 9일에 받아보았다. 프랑스산 봉투, 독일산 우표, 쓰던 노트를 북 찢어 쓴 편지지의 조합이 인상적이었다. 네가 예고한 대로라면 지금쯤 한국에 있겠구나. 서울에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간의 행보에 근거해 추측해보면 대구에 머물 공산이 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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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
토요일 오전에는 화상접견에 응하지 못했습니다. 글로 적기엔 애매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겼을까 걱정하실까봐 펜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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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 작업장 담당주임이 ‘후배 같은 사람’이 접견을 왔다가 그냥 돌아갔다고 알려주더군요. 안 그래도 면회시간은 15분에 불과하고 그것마저 쏜살같아서, 나는 늘상 면회 온 사람들에게 미안스런 마음이 있어요. 그런데 헛걸음을 하게 만들다니, 이거 큰일이로구나, 어쩌면 좋을까, 하면서 마음을 바싹 졸였더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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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구치소에 수감됐다고요. 영어의 몸이 된 걸, 안타까워 해얄지 반겨야할지 모르겠네요. 위로의 말을 하기엔 제처지도 보잘 것 없고, 반갑게 맞자니 맑은 웃음이 지어지지 않는군요. 일단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이 많으셨다는 말만큼은 망설임 없이 드릴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리고 영배씨도 말씀하셨다시피 함께 고생할 수 없어서 아쉽습니다. 지척에 두고도 얼굴을 볼 수도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담장과 담장 사이의 거리가 이리 멀게 느껴지다니, 이산가족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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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6월도 다 지나간다. 시간이 참 빠르다. 그러고 보니 ㅎㅁ면회횟수는 아직 3회나 남아있다. 윽, 큰일이다. ㅎㅁ은 편지에 면회가 “이곳[감옥]의 세계와 거리를 둘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고 썼더랬다. 그 희망을 저버릴 순 없다. 이걸 어떻게 다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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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에는 ‘사장님’이 참 많아요. 내 평생 이렇게 많은 ‘사장님’들을 한꺼번에 보기는 또 처음이에요. (뭐 이곳은 모든 게 다 처음인 일 투성이긴 하지만. 쩝;) 엊그제 작업장 주임은 대뜸 “교도소만큼 사장 많은 데가 어디 있어?”하더군요. 교도소 사정에 밝은 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법한 말이에요. 저만 해도, 최사장님, 한사장님, 김사장님, 이사장님… 등 이곳에서 알게 된 ‘사장님’을 꼽아보면 손가락 발가락 개수를 다 합쳐도 부족해요. 그런데 희한하게도, 제가 보고 들은 것이 적은 탓인지, 이분들이 어디서 어떤 사업을 했다는 이야기는 별로 접하지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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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아. 네가 지난 5월말에 보낸 편지는 무사히 도착했어. 공연이랑 수업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고?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휴학을 할까말까 고민했던 것 같은데, 결국 다니기로 한 모양이네. 지금쯤이면 생활이 정돈이 돼서 한숨을 돌릴 시기려나. 아니면 벌개진 눈으로 기말과제 마무리에 한창이려나. 내가 받은 인터넷 서신에는 너의 주소가 기재돼 있지 않았고, 여성학과 사무실이 옮겨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어서, 이렇게 공개된 지면에다 편지를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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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에 관한 다큐를 몇 개월간 찍었고 또 몇 개월이 지나서야 그때의 기록들을 다시 찾아보고 있다. 당시엔 그 사람의 깊은 속마음까지 엄청 많이 알게 될 거라 기대했던 것 같다. 카메라를 매개 그리고 무기 삼아 나만이 할 수 있는 어떤 진실을 발견하리라 자신했다. 또 그게 다큐의 힘일 것이다. 정치적 병역거부를 한 현민이 감옥을 갔고 나의 촬영도 끝났다. 시간이 흘렀다. 객관적으로 돌아볼 여유도 생겼다. 촬영분의 녹취록을 밑줄 박박 그으며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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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4일 월요일 가족접견이 잡혔습니다. 5월이 '가정의 달'이라서 마련된 행사라고 합니다. 조만간 다음에 있는 제 후원카페에 자세한 내용이 올라올 것입니다. 교도소측에서는 취사장에 우선적으로 가족접견 인원을 배정하는데, 제 윗사람들 중 가족이 올 만한 처지가 아닌 사람이 있었던지라 저까지 차례가 돌아왔습니다.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기대하는 마음이 더 큰 게 사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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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원고지를 꺼냈습니다. 펜을 들자마자 손이 인상을 찌푸립니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부어올라 펜을 바르게 쥘 수 없어서 그렇습니다. 손이 부은 까닭은 설거지 때문입니다. 다른 근육과 관절은 차츰 자리를 잡아가는데 손가락 상태만은 개선될 기미가 안 보입니다. 그러고보니 취사장 막장(나의 직함)들의 손가락은 어김없이 띵띵 부어있습니다.글을 쓸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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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편지를 받고서 오랜만에 ‘고민’이란 걸 할 수 있었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선생님께 제 사정을 상세히 말씀드리는 것은 구차한 행동인 줄 압니다만, 저는 이곳 영등포 교도소에 갇힌 후로 아무런 고민할 겨를도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이유인즉슨, 열흘 전쯤 취사장에 배치된 후로 감금에다 본격적인 징역형이 추가되어서 아침 6시 20분부터 오후 6시까지 1시간 정도를 제외하고는 앉을 틈도 없이 육체노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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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현민님. 처음 인사드립니다. 저는 경남 밀양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이계삼이라고 합니다. 현민님을 후원하는 분들의 카페에서 주소를 알게 되어 이렇게 편지를 드립니다.
이곳은 그래도 남쪽인지라, 아직 꽃샘추위에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입니다만 저희 집 마당에는 진달래, 산수유가 피었습니다. 남쪽 사는 특권이 이렇게 봄소식을 먼저 듣는 게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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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5일 월요일, 비가 내렸습니다. 선배(?) 수감자들의 옥중서한에는 날씨이야기가 많이 나왔습니다. 저는 감옥에 가면 사람들이 감상적으로 변하는가 보다 했습니다. 하지만 햇빛도 들지 않고 날씨를 조망하기도 힘든 독방에 찾아온 빗소리는 그 이유를 알게 했습니다. 빗소리는 이곳과 다른 질서로 이루어진 세계가 지척에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켜줬습니다. 반가웠습니다. 저는 3하18방에서 페트병을 끌어안고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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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오후 5시 30분 경, 검찰에 자진출두 하였습니다. (혹시 모르고 계실까봐 말씀드리는 건데, 그 전 주 재판에서 판사는 저를 법정구속 시키지 않았고, 덕분에 일주일의 휴가를 얻었습니다) 그 이후로 불과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여러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병역 거부자로서 제가 겪는 일들을 최대한 잘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순간순간 찾아온 새로운 감정은 이런 일은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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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조사를 받고 한 달이 지났는데 아무런 소식이 없었습니다. 예정대로라면, 경찰 다음 단계인 검찰에서 소환장이 와야 했습니다. 저보다 앞선 병역거부자 둘은 석달만에 모든 절차를 마치고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연말연시라서 그런가보다 했습니다. 일정이 미뤄진다는 사실에 안도했습니다. 제게 병역거부 선언이 갖는 의미는 감옥에 갈 결심을 했다는 것과 동의어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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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11일 금요일 오후 2시, 용산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습니다. 입영일인 11월 10일 병무청에 전화해서 입대할 의사가 없음을 밝혔고 증빙자료를 팩스로 보냈습니다. 한 달쯤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에 대한 반응으로 병무청에서는 저를 ‘병역법 위반’으로 고발했습니다. 그리고 경찰서에서 소환장이 날아왔습니다. 우편함에서 소환장을 발견하자마자 위층에 사는 주인이 봤으면 어떡하지 싶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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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를 두 개밖에 쓰지 않고서 휴재를 알리자니 민망합니다. 짐작하셨겠지만, 아마도 여러분께서 이 글을 읽을 무렵이면, 저는 영등포구치소에 있을 것 같습니다. 원고를 미리 잔뜩 써둬서 휴재 없이 이어나가고 싶다는 마음을 먹은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애초에 제 능력에서 벗어나는 일이었고, 형편도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양해를 구하는 바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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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든다고 성숙한 인간이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무턱대고 손에 흙부터 묻히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으려고, 일의 방향과 필요한 노력을 판단하는 일이 잦아질 것이다. 자기 몸뚱이 말고도 책임질 게 많아져서 그럴 수도 있겠다. 물론 나의 경우에는, 아이를 기르거나 재테크를 하는 처지에 놓이진 않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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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전 일이다. 그는 행복에 겨울 때, 양 볼이 수줍게 빨개지곤 했다. 그 모습이 참 예뻤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는 내 앞에선 좀체 그런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우리는 연인이었는데. ... 내 앞에서 그런 표정을 짓게 하려고, 마법의 주문처럼 ‘사랑’을 외쳤다. 다행히 효과는 있었다. ... 나중에 헤어질 게 두려워 매달리면서 같은 주문을 반복해서 외기도 했다. 이미 약발이 떨어진 상태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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