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Releases
한겨울 지리산 새벽 눈꽃... 티베트 땅 드넓은 광야를 찢겨내 듯 나부끼는 바람의 향연... 호기심 가득한 함박웃음으로 기분을 풀어주는 어느 동네 아이들의 눈빛...
[32호]즐겁게 존재하기 (0)한달여 일의 제주에서의 체류를 마치고 무사히 서울로 돌아왔다. 제주로 떠날 때는 그동안 하고 있던 일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고 가는 것 같아 마음 한켠이 찜찜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가 없어도 세상이 잘 돌아가고 있다는 것에 약간 충격을 받기도 했다. 돌아와보니, 별일 없었기 때문이다.
은 2008년도에 호주에서 만들어져, 2009년 더번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다큐멘터리 상을 수상하였고, 우리나라에는 2009년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라는 제목으로 상영되었던 작품이다. 호주의 유명 재즈드러머 사이먼 바커는 2001년도에 한국인 제자가 건넨 ‘무형문화제 82호’ 김석출의 연주CD를 듣고 낯선 충격에 휩싸인다. 그 후 수년간 한국을 십여차례 방문하여 이미 80세에 가까운 김석출을 뵙고자 탐문하지만, 한국에는 그를 아는 이는 커녕 변변한 자료조차 없다...
풍경지기의 책이야기 『그 섬에 내가 있었네』, 김영갑, 휴먼 앤 북스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웃음이 난다. 2004년 어느 날, 체격검사를 하는 날이었다. 1학년 때부터 3년 동안 아이들과 함께 생활했기 때문에 체격검사를 하는 날은 ‘아이들이 이렇게 많이 자랐구나!’ 하고 감동하는 날이 된다.
우리 교실이 시끌벅적하다. 웃음소리와 함께 아이들의 우스갯 소리가 들린다. 우리 반에서 가장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아이가 저울에 올라선 것이다.…
글을 읽고 쓰는 소설가와 동적인 작업 그것도 철판을 두드리거나 절단하고 용접하고 긁어대는 조각가가 한동네에서 서로 마주보고 산다면 어떨까? 생각 만해도 쉽지 않은 관계를 형성하고 살아갈 텐데 그 조각가의 작업실이 소설가 소유의 집 앞 창고를 사용하고 있다면 고개가 갸웃해진다.
[31호]낙화유수 / 함성호 (1)사랑하는 일을 왜 사과해야하는지 모르겠다. 영화에서 그런 설정이 많이 나온다. 다른 사람을 사랑해놓고 배우자 혹은 애인에게 눈물 흘리며 속죄의 발언을 한다. 난 그것이 못마땅하다. 사랑을 하지 않을 수 있었는데도 사랑했다는 것인가? 이것은 사랑에 대한 모독이다. 사랑의 자유의지를 전제하는 것이다. 맹금류가 양을 잡아먹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얘기와 같다. 동의할 수 없다. '그 잔인'은 아무 죄가 되지 않는다.
구원을 둘러싼 종교와 윤리의 모순을 그린 영화 , 세련된 화면 속에 도시남녀의 엇갈린 사랑을 그린 로맨틱 코미디 , 핸드폰 분실을 계기로 촉발되는 두 남자의 극한 대립을 그린 스릴러 . 주제는 물론 줄거리, 장르, 화면 질감, 작품성 등에 이르기까지 전혀 다른 세 영화에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한 가지 공통점은 가면형 우울증, 일명 ‘스마일 마스크 신드롬’을 내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09년 여름에는 이주노동자를 다룬 한국영화들이 잇달아 개봉하였다. 영화 (2009)의 개봉을 전후하여 연전에 만들어졌지만 개봉하지 못하고 있던 영화 (2007)과 (2008), (2008)들도 개봉관을 잡으면서 이주노동자 영화는 하나의 트렌드를 형성하였다. 이전까지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영화로는 인권영화프로젝트의 옴니버스 단편 (2003)와 (2006)가 전부였던 것을 감안하면, 의미 있는 변화로 꼽을 수 있다....
거울을 보기가 겁이 난다. 나이가 들면서 더더욱 그렇다. 빼어난 미모가 있는 것도 아니고 성형을 한 것도 아닌 데도, 얼굴은 볼 때마다 다르다. X-RAY선으로 마음속을 투사하기라도 한 것처럼,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가득할 때는 얼굴도 쭈그렁 마귀할멈이 되어 있다. 모처럼 옛날 친구를 만나 한바탕 수다를 늘어놓고 들어온 날은, 중학교 적 갈래머리 아이의 눈웃음이 살랑거린다. 뼈마디가 욱신거려 따끈한 아랫목만 자꾸 밟히는 날이면, 얼굴 가득 실뱀이 기어간다. 눈 꼬리도 실룩, 입 꼬리도 실룩, 여간 꼴사납지 않다. 그러니 하나의 얼굴이 수십 개의 얼굴로 변주되는 것쯤이야 다반사다.- [30호]시가 내게로 왔다 (0)하루에 버스가 단 세 번밖에 오지 않는 산간 마을에 은둔(?)하며 지내고 있다. 운전을 하지 않기 때문에 한번 제주 시내나 어딘가로 가려면 큰맘 먹어야 한다. 게다가 이번 여름은 어찌나 더운지 제주 도민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나는 나름 이 여름을 색다르게 즐기게(?) 되었다. 하지만 서울에서 못 보고 못 느꼈던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기에 오래 기억에 남을 여행이자 칩거 생활이 될 거라는 예감이 든다...
[29호]영화, 수다, 우정 (3)평소 존경하는 선배교사와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7년 째 독서모임을 함께 하고 있는 선배교사였다. 같은 학교에 근무하고 있던 시절에는 함께 책을 읽었다. 내가 읽은 책 중 좋았던 책을 그녀에게 빌려주었다. 얼마 뒤 그녀가 그 책을 읽고 나면 우리는 학교 정원에서 차를 마시면서 수다를 떨었다. 나는 국어교사, 그녀는 지구과학교사였다. 흔히 이야기하는 문과적 사고와 이과적 사고가 만나 어우러지는 기쁨(?)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29호]엄마생각 / 기형도 (4)학교가 파하는 12시 40분이면 어김없이 핸드폰이 울린다. 액정에 새겨진 이름 꽃수레. 집 전화다. 며칠 전엔 현관문을 열었을 때 책상에 엄마가 없으면 너무 허전하다며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는 제목으로 일기를 써서 나를 놀래킨 딸내미. 이번엔 또 어떻게 마음을 달래주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받는다. 짐짓 밝은 척 오버한다. “어, 우리 딸, 집에 왔구나!” “오늘로 6일째야. 엄마가 집에 없는 거....” 풀이 다 죽은 목소리다...
은 현존하는 이탈리아 최고의 음향감독 미르코 멘카치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로, 2008년 함부르크영화제 최우수어린이영화상을 수상하였다. 1961년생 미르코는 8살 때 총기 오발 사고로 시력을 잃는다. 시각장애인에게 일반학교 교육이 허용되지 않았던 당시 법에 따라 미르코는 부모님과 떨어져 제노바의 시각장애인 특수학교에 입학한다. 가톨릭 기숙학교인 타소니는 시각장애인 학생들에게 직조기술과 배전기술 등 직업교육을 수행하는 기관이었다...
지금 제주도에 있다. 남편이 이곳에서 지내고 있기 때문에 방학이 되자마자 아이들을 데리고 이곳 제주로 내려왔다. 공항에서 받은 제주도 지도와 뉴스를 보면 누구나 제주에서 가 볼 만한 곳이 정말 많고 여름을 지내기 딱 좋은 곳이라 생각할 것이다. 여기서 열흘 남짓 생활하는 동안 우리 가족도 제주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본성(?)은 속이지 못하나 보다. 내가 이곳에서 꼭 빠뜨리지 않고 가보고 싶은 곳은 역시 도서관이었다.
미하엘 엔데의『보름달의 전설』은 참으로 철학적인 그림책이다. 진리, 구원, 깨달음 등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진다. 비네테 슈뢰더의 몽환적인 그림 또한 텍스트의 깊이를 더해준다. 이 그림책은 은자와 도둑. 상반되는 두 캐릭터가 진리를 찾아가는 여정을 잘 보여준다. 은자의 삶은 참으로 드라마틱하다. 젊었을 때 죽도록 사랑했던 여인은 결혼식 전날 다른 사내와 줄행랑을 친다. 부유하고 명망이 높았던 예비 장인은 폭풍으로 전 재산을 날리고 거지가 된다. 은자는 사랑, 부, 명망……. 지상의 모든 것들이 허울뿐이며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은자는 진리를 찾기 위해 책 속으로 파고든다. 보일 듯 보일 듯,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던 진리를 찾아 난해하기 짝이 없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전 저작을 샅샅이 뒤진다. 그러나 아퀴나스는 죽을 무렵에 쓴 마지막 책에 가서야 “내가 쓴 모든 책이 진실로 속이 빈 지푸라기에 지나지 않았다”며 은자의 뒤통수를 친다...
한국판 ‘레옹’이란 별칭이 붙은 의 구도는 익숙하다. 범죄조직에 가족을 잃은 소녀와 ‘옆집 아저씨’의 응징이 골간이다. 차이점은 아저씨의 용모가 남다르다는 것. 의 최대 매력은 역시 원빈이다. 조각 같은 얼굴과 우수에 찬 눈빛, 거기에 복근까지 완비된 원빈이 전광석화처럼 특공무술을 펼치는 모습은 무려 의 강동원을 평범한 직장인처럼 보이게 할 지경이다. 조연들의 캐스팅과 연기도 아주 좋다.
작년에 처음으로 교육실습생을 지도했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년 동안 가르쳤던 제자였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 나는 그의 담임교사였다. 그는 국어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었다.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도 따뜻함, 유쾌함을 간직하는 그를 보면서 그와 만나 함께 배움의 장을 만들어갈 아이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꿈대로 국어교육과로 진학했고 작년 내가 있는 학교로 교육 실습을 왔다. 그가 교육실습을 마치고 떠나던 날, 『행복한 인문학』(임철우 외 지음, 이매진)을 선물했는데 속표지에 위와 같이 적었다.
를 보고 있자면 이게 정말 40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란 말인가 하고 뜨악하게 된다. 끊임없이 난무하는 폭력과 지나치리만큼 자세한 강간장면 등 각종 폭력이 종합세트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물론 순전히 폭력의 강도만을 놓고 보면 더 자극적일수록 상품가치를 높이는 오늘날에는 더 한 것도 왜 없겠느냐마는, 우리가 생각하는 도덕과 사회를 유지시키는 최소한의 기초에 무지막지한 폭력을 휘갈긴다는 점에서 보면 는 진정 폭력적이라 할 만하다...
[27호]Rapha공방-안영희 (3)내가 어릴적 집뜰이 선물로 주로 하던 양초나 성냥은 이제 주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광경이 되었고 전기가 나갔을때도 필요했던 비상품목 양초에 대한 여러 가지 기능들이 있지만 무엇보다 사람들과의 소통과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을주는 초를 난 좋아한다. 가끔 여성성이 강하다고 느껴지는 난 어둠속에 초를 켜놓고 그 향과 빛에 황홀한 기분을 만끽할때도 있다. 2년전 문화살롱 공을 만드는데 계기를 만들어준 사람이 있었다.
[27호]얼레지 / 김선우 (3)나를 키운 8할은 오빠들이다. 열아홉 이후에는 늑대소굴에서 살았다. 그들을 남자로 보았을 리 만무하다. 사랑과 우정사이에서 갈등을 일으킬 여지도 없었다. 성적인 것에 무지했다. 순결이데올로기가 내면화된 줄도 모른 채였다. 당시 내게 남자란 이성理性. 다른 성별이 아니라 합리적 존재였다. 같이 있으면 말도 통하고 배우는 것도 많고 즐거웠다. 좋은 사람의 좋은 기운에 끌렸고 그들도 나를 국민여동생처럼 예뻐했다...
얼마 전 발표된『미리 가본 2018년 유엔 미래보고서』를 읽다가, 2018년 대한민국 인기 직업 가운데 ‘다문화 전문가’가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다문화 가족이 무려 100만 명, 10년 후엔 400만 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란다. ‘그래, 그쯤 되면 다문화 전문가가 필요하기도 할 거야.’ 싶으면서도, 한편 걱정스런 마음이 들었다. 우린 뭐든 자신 없는 일엔 그럴듯한 ‘전문가’를 내세우지 않던가? 이번에도 혹여 ‘전문가’ 뒤에 숨어 묻어가고픈 얄팍한 심리가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치자. 그들에겐 과연 어떤 교육 프로그램이 제공될까?
[26호]인셉션 (0)“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의 데카르트 역시, 꿈에 대해 사유했다. 그는 감각은 확실한 진리를 보증할 수 없음을 입증하기 위해 꿈을 반례로 들었다. 꿈속에서도 생생한 감각을 느낄 수 있지만, 현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꿈과 현실은 어떻게 구분되는가? 데카르트는 꿈은 ‘깨기 때문에’ 현실이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영원히 깨지 않는 꿈에 빠진다면? 혹은 깼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꿈이라면? 또는 꿈속에서 조차 ‘이건 꿈이야’를 느끼고 있는데 그 인식이 명석판명하다면?...
[25호]트라우마에 대한 치유 (0)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살면서 중요한 결정과 판단을 해야할때가 있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간에 그 결정에 따라 자신의 인생이 더 좋은길로 갈수도 있지만 전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도 갈수있다.지금까지 살면서 그런 결정과 판단이 모두 잘되지는 않았지만 다행스럽게도 수정되고 바뀌면서 원하는 삶의 방향을 찾아가고 있다...
좀스러운 생각일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부터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나이가 내 나이보다 많은가 적은가를 확인해 보는 습관이 생겼다. 아마도 어떤 일을 할 때, 이제 내 나이가 어리다고 변명하기에는 글렀음을 깨닫고 나서부터 이런 습관이 생겨난 것 같다. 이제는 내 나이가 적지 않고, 그러니까 나이 몫을 잘 해내야 한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자꾸 하나보다. 옛날에는 좋은 글을 읽을 때마다 저자가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장마가 소강상태다. 비가 벌써 그립다. 장마는 싫어도 비는 좋은데. 아쉽다. 생활인이 되고서는 긴 비가 원망스럽다. 이유는 빨래가 마르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여름철에 땀도 많이 흘려 옷이며 수건이 하루에도 몇 장씩 나오는데 비가 오면 빨래가 마르지 않고 말라도 눅진눅진하여 영 불쾌하다. 며칠 전에는 하는 수 없이 빨래를 세탁기에서 꺼내자마자 다림질을 했다.
20세기 초 미국남부의 흑인여성의 수난과 연대를 그린「컬러 퍼플」(1985)은 14세 딸을 성폭행하여 낳은 두 아이를 강제로 입양 보낸 뒤 그 딸은 중년남자에게 후처로 보내고, 다시 작은 딸을 추행하는 계부를 보여준다. 「예의 없는 것들」(2006)에도 입양한 딸을 성폭행하여 딸을 낳게 하고, 그 딸마저 성폭행하는 양부가 나온다. 「조용한 세상」(2006)에도 계부에게 성추행을 당한 사실이 급우들에게 알려지자 수치심에 자살하는 여고생이 등장하며, 이와 더불어 양부에 의한 성폭행으로 임신을 한 17세 소녀가 양부를 칼로 찔러 상해를 입히고, 이후 성인이 되어 아동위탁기관에 근무하면서 위탁 소녀들을 보호한다는 목적으로 소녀들을 죽이는 연쇄살인범 여성이 등장한다.
달맞이의 책꽂이 - 파베우 파블락 그림 / 베키 블룸 글 / 김세실 옮김 / 시공주니어난 달리기는 젬병이다. 초등학교 운동회 날 그 흔한 공책 한 권 못 받았다. 울 엄마는 다른 집 아이들이 자랑스럽게 팔을 쑥 내밀고 들어오는 모습을 참 많이 부러워했다. 슬며시 다가가 팔에 찍힌 도장을 확인하고는 “오메, 좋겄다!”를 연발했다.
언젠가 한 번 정말 죽기…
이 책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작년이었다. 남편이 하루는 『한겨레21』을 내밀었다. 특집기사로 노동일기를 연재하는데 기자가 직접 빈곤노동일을 하면서 쓴 노동일기라고 했다. 수업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편이 덧붙였다. 그때 읽었던 기사가 ‘감자탕 노동일기’였다. 글을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음식점마다 직원 수가 줄고 한 사람이 맡은 일은 늘어나서 하루 종일 쉴 사이 없이 일을 하는 식당 아줌마들은 식당 종이 울릴 때마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자동 반응을 한다. 하루 12시간을 일한 후 퇴근하면 다시 가족들 뒤치다꺼리에 뻗어버린다...
평생 한가지 재능을 가지기도 쉽지않은 평범한 우리들 인생에서 한 개도 아닌 두가지 이상의 비범한 재능을 지닌 그런 사람이 있다면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 될것이다. 그것도 그저 잘하는 수준을 넘어 신이 내린 축복처럼 뛰어나다면...그런 재능을 지니기 위해서는 물론 남보다 더 피나는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닌 설명할수없는 것들도 있다...
아동성범죄에 관한 우리 사회의 반응은 ‘경악할 만한 사건’이라는 비분강개와, 형량 강화로 사회에서 격리시켜야 한다는 엄벌주의가 대세를 이룬다. 그밖에 신상공개와 전자발찌를 둘러싼 이중처벌과 인권논란이 잠시 일다 묻히는 정도다. 그러나 아동성범죄는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대형사건으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경찰청자료에 의하면 13세 미만의 아동성범죄는 최근 4년간 급증하여 2008년에는 1,220건에 이른다...
달맞이의 책꽂이 -『할아버지와 나』마야 게르버-헤스 글 / 하이케 헤롤드 그림 / 유혜자 옮김 / 한림출판사할아버지와 아이(손자)가 마주 서 있다. 무릎을 살짝 굽히고 아이와 눈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아, 할아버지는 아이와 잘 지내고 싶은 모양이다. 그런데 뭔지 어색하다. 두 손을 무릎과 무릎 사이에 끼고 있다. 아이 역시 책을 가슴에 꼭 끌어안고 있는 폼이,…
[23호]삼류작가 (0)내 사진중에 추억을 떠올리며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진한장이 있다. 7년이란 세월이 흘러도 언제나 곁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다시 제자리를 찾는 그런 사진이지만 언제봐도 정겹기만 하다.-
요즘 나는 내가 대한민국 국적이 맞는지 좀 걱정스럽다. 물론 얼마전 열심히 월드컵 응원도 했고, 6월 2일 선거에도 성실히 참여했으니 한국 국적이 맞긴 맞다. 근데 최근 만난 엄마들은 나와 이야기를 하면서 대한민국 엄마로서 내가 도통 이해가 되질 않는다고 하니 말이다. 얼마 전 옆집에 사는 초등1학년 엄마가 우리집에 차를 마시러 왔다. 일단 우리집에 아이들 책보다 내 책이 많은 걸 보고 엄마들은 무척 놀란다. 좋은 의미에서가 아니라 안 좋은 의미에서 놀라는 것이다. 애한테 기본적인 투자를 안하니까. 다른 집엘 놀러 가면 이제는 내가 놀란다...
-
‘독일의 순교자’, ‘프라하의 도살자’ 상반된 이 별칭은 라인하르트 트리스탄 하이드리히에게 주어졌던 것이다. 하이드리히는 히틀러가 가장 신뢰하던 부하였으며, 나치를 위해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전쟁기계였다. 유럽에 있는 모든 유태인을 말살시켜 버리겠다며 ‘최후의 소탕작전’을 세운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레지스탕스에게 암살당하자, 나치들은 그에게 ‘독일의 순교자’란 거룩한 이름까지 부여했다. 우표까지 발행하며 그를 추억했다...
-
< 하얀 리본>은 20세기 초 독일의 시골마을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세계대전과 파시즘의 기원을 탐구하는 영화이다. 흔히 세계대전과 파시즘의 기원을 논한다고 하면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이 등장하리라 예상하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건 의사의 낙마, 소작인 처의 사고사, 남작 아들이 입은 폭행, 영지의 화재, 장애아가 입은 상해 등이다. 그 흔한 유대인 하나 등장하지 않는다. 위 사건들이 세계대전이나 파시즘과 무슨 상관이 있냐고? 영화는 알레고리를 통해 전쟁이라는 사건의 작동방식과 파시즘적 주체의 형성을 보여준다...
- [23호]비 / 김수영 (1)시골구석에서 사는 아이가 희귀난치병이다. 몇 번 들었어도 이름을 외기 힘든 척수성근위축증. 태어나자마자 사지에 힘이 빠진다. 심폐기능이 약해 호흡이 어렵다. 지역 내 큰 병원에서는 고개를 저었다. 엄마는 억척스레 아이를 들쳐 업고 상경했다. “그래도 큰 병원 가봤다는 소리는 들어야지 원이 없잖아요.” 난 이런 얘길 들을 때 눈을 어디다 두어야할지 모르겠다. 그녀의 투박하고 새까만 문신한 눈썹과 실밥 뜯어진 비즈가 처량하게 매달린 네크라인을 멀뚱멀뚱 훑는다...
-
미술계에서 가장 성공한 한사람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서울아트가이드를 만든 김달진 소장을 지목할 것이다. 일반인들에겐 생소할 수 있는 무가지 서울아트가이드는 이름 그대로 낯선 전시장을 찾은 일반관객과 작가 화랑을 연결하는 휴대용 매체이다. 거의 모든 갤러리 입구에 비치되어 무료로 배포하고 있는 서울아트가이드는 9년이 지난 현재 많은 작가들과 갤러리, 미술관에서 홍보수단으로 가장 많이 이용하는 매체이기도 하다. 90년대 초반 인사동에서 미술잡지 사진기자를 하고 있을 때 허름한 차림에...
- [22호]바람 같은 그니 (0)아주 멀리서도 그니는 눈에 확 띈다. 한 그루 미루나무처럼 호리호리한 몸에 바바리 자락을 날리며 휘청휘청 걸어가는 것을 볼라치면, 슬며시 다가가 팔이라도 잡아주고 싶다. 밥상머리에 앉아 간드러지게 ‘사랑밖에 난 몰라’ 라며 노랫가락이라도 흥얼거리는 날은 좀처럼 그니의 매력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다. 몇 겹의 비닐봉지 안에 담긴, 그니가 직접 담근 오이지 맛이라도 보게 되면 영락없이 그니의 덫에 턱 걸리고 만다. 그래서인지 그니 주위엔 광팬들이 참 많다...
-
대학을 졸업하던 해, 중등교사임용시험에 보기좋게 떨어졌다. 나는 하루빨리 취직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오빠는 집안형편을 생각해서 공무원 시험에 응시했고 이 시험에 합격하자 직장에 근무하며 야간대학에 다녔다. 그리고 의학공부를 하고 싶어하던 동생은 학비가 들지 않는 간호사관학교에 진학했다. 대학입시를 두 번 실패하고서야 대학에 들어간 나만 여전히 부모님의 짐이 되고 있었는데 중등교사임용시험마저 실패하고 만 것이었다...
- [22호]사십대 / 고정희 (7)꽃단장 컨셉에 맞추느라 신발장을 지키던 7센티 정통 하이힐 신고 외출했다가 아주 고생을 했다. 집에 오자마자 벌겋게 달궈진 발을 따순 물로 씻고 로션을 발랐다. 왠지 뼈랑 힘줄이 툭 튀어나온 것 같아서 발을 정성스레 주물렀다. 구겨진 발톱을 폈다. 불과 작년까지 멀쩡히 신어놓구선, 저 신발 당장 버릴 거라고 투덜거렸다. 그 꼴을 아들이 보더니 “그러게 왜 하이힐은 신었어요” 한다. 그 뉘앙스가 꼭 전원일기 김회장이 팔순 노모 나무라는 말투였다...
-
2010년에 한국전쟁에 참전한 학도병의 실화를 다룬 영화가 개봉된다고 하면 어떤 영화가 상상되는가? 반전의 메시지나 한국전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기대했다면 < 포화속으로>를 보지 말기 바란다. < 포화속으로>는 반전이 아닌 반공 메시지를 담은 ‘무용담’이다. 한국전쟁에 대한 시각은 냉전시대 ‘공식입장’에서 한 치도 어긋남이 없으며, 어머니를 비롯한 온갖 클리셰들이 포탄처럼 떨어진다. 국가보훈처가 150억원 예산으로 극장판 < 배달의 기수>를 찍는다면 이와 흡사할 것이다...
-
< 마이 제너레이션>은 ‘자신의 세대’에 대해 발언한다. < 플레전트빌>이 아니더라도 의미를 파악함직한 무채색 화면으로, 영화는 담담하고 처연하게 청년실업과 ‘카드깡’을 말한다. 시무룩한 표정과 풀이 죽은 목소리로 영화가 전하는 아픈 진실은 이런 것이다. 청년실업과 신용불량은 IMF사태 이후 일어난 일시적인 소요가 아니라 거대한 문명사적 과정이며, 노동과 고용의 신화는 이제 막을 내리고 있다고...
-
< 가난뱅이 역습>은 한마디로 '가난뱅이 계급의 서바이벌 기술 실용서'이다. 고로 이 책을 '읽을거리'로 취급하는 당신 혹은 '이 책을 읽고 이해하는 척하는 당신'! 당신에게는 이 기술들이 필요 없다. '바가지나 씌우는 부자 계급'은 가난뱅이의 적임이 분명하다. 당신이 이 책을 읽고도 집에 '남아도는 물건'을 창고에 쌓아둔다든가, 여러 명이 탈 수 있는 차를 혼자 타고 다닌다면 말이다. ...
- [21호]책 읽기와 공감능력 (3)얼마 전 어느 대학교 화장실에서 청소일 하는 아주머니와 젊은 대학생이 말싸움하는 장면이 인터넷 동영상으로 떠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적이 있다. 뉴스에까지 등장한 이 사건은 결국 그 당사자인 학생이 직접 아주머니를 찾아가 사과하는 것으로 일단락이 되었던 것 같다. 이 사건이 터지자 여기저기서 개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떻게 새파랗게 젊은 사람이 어머니같은 사람에게 그럴 수가 있느냐 ...
-
하얀 바탕에 진회색의 육중한 건물이 우뚝 서 있는 겉표지를 보는 순간, 스르르 손이 먼저 움직였어. 『섬』이라는 제목이 주는 느낌도 좋았고. 정현종이 그랬던가?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고. ‘가고 싶다’는 욕망을 일으켰으니 그에게 섬은 아름다운 공간, 희망적인 공간일 거야. 섬을 통해 사람들 ‘사이’를 유영하고 싶어 하니까. 사람과 사람을 이어준다는 점에서 보면 섬은 매개의 공간이요, 소통의 징검다리이기도 할 테지. 하지만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섬은 단절의 공간, 결코 다다를 수 없는 심연의 공간이기도 해. 그러니 이 책의 제목을『섬』이라고 적은 건, 정말이지 절묘한 선택인 것 같아...
-
2008년 12월 어느날. 그동안 스폰지 그룹을 만들어 섬展및 여러 가지 활동을 같이 해오던박이창식샘 에게서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개인적으로 작업실을 알아보다 공동으로 갤러리를 만들어 같이 운영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됐다고..위치는 의정부 시청앞 의정부2동 주택가골목. 갤러리를 하기엔 정말 생뚱맞고 지하공간에 인적도 별로없는 낯선이곳은 박샘의 제자가 작업실겸 창고로 사용하던 곳이었다. ...
-
뭇 남성동지들의 연인이 되어주며 독신으로 살 줄 알았던 선배다. 뜻밖에 서른중반에 같이 일하는 연하남 동지랑 결혼했다. 아이없이 지냈다. 마흔이 넘으니 슬슬 아기가 눈에 들어온다고 했는데 아기를 가지려니 생기지 않았다. 두 번의 유산. 언니가 '유산했다'고 전화한 날, 언니네 잠시 들렀는데 서랍장 위에 장난감 같은 아기신발이 놓여있었다. 그걸 보니 마음이 짠했다. ...
-
동성애자들이 슬픈 이유는 그들의 사랑이 세상의 인정을 받기 어려워서이기도 하지만, 사랑을 주고받을 인구군이 협소해서 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보다 더 슬픈 사람들이 있다. 세상은 이들에게도 사랑의 욕구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으며, 그들은 이성으로부터는 물론 동성으로부터도 사랑받지 못한다. 연애가 불가능한, 소수자 중의 소수자, 속칭 ‘찐따(들)’말이다...
- [20호]좁은 공간, 너른 품 (0)드디어 ‘우리’ 집이 생겼다. 평생 전셋집으로 전전하던 우리에게 ‘우리’ 집이 생겼다. 그 동안 이년 혹은 삼년에 한번씩 꼭 이사를 했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마냥 신났지만 중학생이 되자 우리가 이사하는 모습이 부끄러웠다. 이사를 하는 날이면 큰 대야마다 살림살이를 가득 담아서 집 앞에 늘어놓은 모습, 그 모습을 쳐다보며 지나가던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질 때마다 내 자신이 왜 그리 초라하게 느껴졌는지. ...
-
저자 새러 블래퍼 허디(Sarah Blaffer Hrdy)는 캘리포니아대학 데이비스 캠퍼스에 석좌교수로 있는 영장류학자다. 스스로 소개하고 있는 것처럼, 인도 라자스탄에 사는 랑구르원숭이의 영아살해를 연구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고, 국내에 번역된 및 작년에 출판된 을 비롯한 여러 책과 글들을 발표했다. ...
-
'우리가 여기에서 다시 만난 것은 어느 별이 도운 것일까요?' 삼류 멜로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대사. 순박해서 익살스러운 이것은 니체의 말이다. 니체가 평생 사랑했던 단 한명의 여인, 루 살로메를 처음 보고 건넸다는 유명한 인사말이다. 38세의 니체는 21세의 루에게 변변한 데이트도 없이 청혼했다가 묵사발이 된다. 안타깝게도 루는 단 한번도 니체를 사랑하지 않았다. 루가 꽤 매력적이고 총명했나보다. 루는 훗날 릴케, 프로이트까지 당대의 지성들과 러브라인을 형성한다...
-
정말 우연하게도 만나야만 했던 운명도 있고 우연한 기회에 만나고 기억에서 사라지는 많은 인연들도 있다. 전시를 앞두고 사진을 찍었는데 잘못찍어 쓸수가 없게되었고 전시할 갤러리에서 내게 다시 사진을 찍어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작가이름은 염성순. 정상적이었다면 만날일이 없었을것 같은 작가를 정릉에 있는 작업실에서 만났다...
-
몇해전 우리나라 목판화가들을 찾아 1년정도 전국을 누빈적이 있다. 서울을 비롯해 경기,강화,전라도,경상도,제주도까지 목판화가들이 서로 인정한 숨은 고수들을 찾아..기회가 되서 한분씩 소개를 하면 좋겠지만 그분들중 특히 기억에 남고 서로 인연이되서 자주 만나게 되었던분이 목판화가 오경영 선생님이었다.부드러운 미소속에 강한눈빛, 슈퍼마켓 지하창고 작업실,순박하고 따뜻한 마음씨,예사롭지않은 섬세하고 세밀한 작업들 ...
-
꽤 매혹적인 제목을 달고 있는 책들은 종종 독자의 은근한 기대를 보란 듯이 배신한다. 순진한 독자들의 성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푸코의 , 유명세를 무색하게 만드는 마조흐의 소설들, 정작 대상에 대한 명쾌한 해답은 제공하지도 않으면서 ‘~란 무엇인가?’ 같은 원초적인 제목을 달고 있는 책들……. 그 책의 리스트 마지막에 이 책(오사와 마사치의 )을 추가해도 결코 결례는 아닐 것이다. ...
-
여자가 (남자)첩을 둔다는 설정이 그리 익숙한 것은 아니다. 흔히 처첩제는 일부다처의 상황을 그리는 것이었다. 시대를 많이 올라갈 것도 없다. (1994)에서 보듯, 한국전쟁 직후까지 한 지붕 아래 처첩이 기거했던 풍경이 존재하였다. ‘한 지붕 아래’라는 규정이 빠지면, ‘두 집 살림하는 남자들’의 이야기는 셀 수 없이 많다. 에서 에 이르는 무수한 멜로영화는 물론이고 ...
- [19호]보리/ 이재무 (1)선거 전후로 질풍노도의 시간을 보냈다. 그냥 다 속상하고 안타깝고 갑갑했다. 적합한 관념을 취하지 못해 심하게 작용 받았다.;; 화병이 났는지 선거 날은 아침부터 심한 두통이 찾아왔다. 침대에 자석처럼 붙어 있다가 오후 2시에 가까스로 투표장에 갔다. 줄이 길었다. 안에서 먼저 투표를 하고 나오던 40대 남자가 내 앞에 서 있는 남자를 보고는 반갑게 아는 척이다. ...
-
무척 대단하고 멋있는 결심을 한 것 같지만 사실은 고백하건대 제주도를 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책을 읽어야 '책빵'의 글을 쓸 텐데, 거기서 도무지 책 구경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는 여행이라 가방에 잔뜩 옷을 쑤셔 넣고 나니, 책 들어갈 여지가 없었고, 그래도 미련이 남아 딱 한 권 넣어간 책이 그만 레비 스트로스의 였다. ...
-
2004년부터 대략 3년정도 경기문화재단에서 발행하던 ‘기전문화예술’이란 잡지 프리랜서 사진기자를 지낸적이있다.뜻이 맞는 편집장과의 일이라 즐겁게 잘 보낸 세월이었다. 그전에는 주로 미술쪽 인물들을 만나왔다면 잡지 성격상 문화,예술 전반에 걸친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고 교류하게 되었다. 그중 기억에 남는 한사람. 어릴적부터 이미 그의 노래를 듣고 자랐고 좋아했던 한대수를 만난것이었다. ...
- [18호]기러기 / 메리올리버 (3)직감이라는 것. 선천적인 부분도 있지만 나이 들면서 경험치에 비례해 발달하는 측면이 있다. 특히 고통 체험이 감각세포를 단련시킨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도 있듯이 번뇌 그 후, 눈에 들어오는 세계는 넓고 깊어진다. 암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한테 가을날 단풍이나 밤하늘 둥근달이 이전처럼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다. 또 자아 붕괴의 통증으로 몸부림쳐본 사람은 누군가의 표정과 말투에서도 고유의 느낌을 짚어내는 신통력을 발휘할 수 있다. ...
- [18호]미자에게 다가가기 (1)예순 여섯의 할머니인 미자가 나무를 올려다보고 있다. 나무를 잘 보기 위해 나무를 보고, 또 본다. 그리고 나무와 이야기를 나눈다. 지나가던 이웃 할머니가 미자의 모습을 이상하게 쳐다본다. 할머니가 뭐하냐고 묻자 미자는 나무를 보고 있으며, 나무와 이야기를 나눈다고 말한다. 말을 건 할머니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지나간다. 정신 나간 사람을 만났다는 표정이다. ...
-
임상수의 는 김기영의 의 리메이크작이 아니다. 원안을 대자면, 내용면에서는 김동인의 이, 스타일 면에서는 이 연상되며, 콘텍스트 적으로는 ‘21세기 식모살이’라는 화두를 꺼낸 과 맞닿아 있다. 세경의 사랑이 참혹한 결말로 ‘꿈의 불가능성’을 입증하였듯, 의 결말 역시 ‘복수의 불가능성’을 역설한다. ...
-
현대 동화에서 “가장 대담하고 신나고 뻔뻔스럽고 재미있는 어린이 책”을 쓴 작가. 로알드 달을 일컫는 찬사다. 그는 기발한 상상력으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하지만 그 뒤에는 현대인에 대한 신랄한 조롱이 숨어 있다. 현대인의 비참하고 부조리한 일면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멋진 여우 씨>또한 다르지 않다. 인간과 여우의 한 판 승부가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
-
작년 여름까지 매주 월요일 점심때면 아버지가 오셨다. 빈 반찬통이 들은 가방과 아이들 과자를 한보따리 들고 오신다. 그러면 나는 일주일치 밑반찬을 만들어서 빈통에 담아 드렸다. 반찬이라고 해봐야 뭐 별거 있을까. 멸치나 북어를 볶은 마른반찬 한 가지, 삼색나물 중 두어가지, 오뎅이나 두부조림, 불고기나 오징어볶음 같은 단백질류 등등이다. 일요일에 준비하거나 월요일 아침에 허겁지겁 준비하는데, 그 시간이 한없이 우울하다. ...
- [17호]인디포럼에 초대합니다 (21)독립영화 작가들의 모임인 ‘인디포럼 작가회의’가 매년 개최하는 영화제인 ‘인디포럼’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독립영화제이며, 독립영화라는 정체성을 지닌 최초의 영화제입니다. 1996년에 시작하여 올해로 15주년을 맞은 ‘인디포럼 2010’이 2010. 5. 27(목) ~ 2010. 6. 2(수)까지 7일 동안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립니다. * 인디포럼(http://www.indieforum.co.kr)이 위클리 수유너머 독자분들에게 초대권을 드리고자 합니다(선착순 1인 2매, 10명. 아래 댓글로 신청해주세요.)
-
‘문자’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를 오래도록 마음에 품은 적이 있었다. 미련퉁이 같은 여자. 사랑도 고행처럼 하는 여자. 그러나 미워할 수 없는 여자. 서영은이 그려내고 있는 속 그녀, 문자는 내가 읽었던 여느 소설 속 주인공과는 너무도 달랐다. 너무 어수룩하고 너무 평범해서 어디서건 불현듯 마주칠 것만 같았고, 그럼 단박에 척 알아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
2008년 이맘 때, 우리는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소리높여 외쳤다. 그런데 요즘 한국의 대통령은 촛불들이 반성하지 않는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다시 5월을 맞아 촛불들이 일어날까봐 두려운 걸까. 많은 사람들이 이명박 정부로 인해 한국의 민주주의가 20년 전 수준으로 퇴보했다고 비난한다. 그리고 6월 2일 지방선거를 맞이하여, 선거로 이명박 정권을 심판하자며 결의를 모은다. 과연 우리는 지방선거를 통해 후퇴한 민주주의를 되돌릴 수 있을까? ...
-
오래전 퍼포먼스와 설치작업을 하는 박이창식쌤과의 인연으로 만난 춤꾼들이 있었다. 분야는 틀렸지만 서로의 예술적 끼와 추구하는 방향이 같았기에 의기투합해 서로가 필요한 역할과 도움을 주고 박쌤이 기획한 여러공연에 참여해 매번 다른 이미지의 몸짓을 선보였다. 춤을 출때면 어떤 형식에도 매달리지 않는 자연스러움과 완벽한 호흡에 너무도 멋지고 잘어울린다 싶었는데 두사람은 부부였다. ...
- [16호]시험교를 아십니까 (1)지금도 간혹 그런 꿈을 꾼다. 시험 보는 꿈. 꿈속에서 나는 고등학교 시절로 되돌아가 시험을 본다. 꿈에서 자주 치르게 되는 시험 과목은 물론(?) 수학이다. 시험지를 보니, 모르는 문제가 절반 이상이다. 정신없이 풀다 보니, 답안지를 하나씩 밀려 썼다. 시험 종료 종이 쳤는데, 등에서 진땀이 난다. 악몽이다. 휴, 나이 마흔이 넘었는데도, 철없이 시험 보는 꿈을 꾸다니. 그러나 한편으로는 시험에 대한 강박 관념이 내 무의식 속에 이렇게 오랫동안 고질적으로 남아 있었구나 하는 씁쓸함과 동시에 시험이 주는 중압감이라는 게 얼마나 큰지도 새삼 실감하게 된다. ...
-
는 광기가 빚어내는 영웅성이 어떤 식으로 체제의 결함을 교묘히 가려주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지를, 그리하여 영화가 현상 유지를 위해 온 힘을 다하는 권력과 얼마나 쉽게 결합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영화다. 가 사상 최대 관객을 기록한 를 누르고 아카데미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등 각종 굵직굵직한 상들을 싹쓸이 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권력과 쉽게 결합될 수 있는 특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
-
나는 시란 말만 들으면 가슴이 아프다. 누구도 행복할 땐 시를 쓰지 않을 것이다. 아니, 내가 살만할 땐 시를 읽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해서 읽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생이 막막할 때 삶에 지칠 때 처방전을 찾기 위해 시집을 편다. 톨스토이의 통찰대로 행복한 사람들의 이유는 대개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사람들은 제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 그 오만가지 상처의 사례가 시집에 들어있다. ...
-
박민규의 소설 에는 주인공이 자신을 둘러싼 현실을 한탄하는 구절이 등장한다. 백화점 마트 일을 하는 주인공에게 세상이란 인간다움을 가르쳐주는 이 없고 경쟁만을 종용하면서 등수를 매겨 성공 아니면 실패로 사람을 판단하는 곳이다. 진보적이라고 자신의 성향을 밝히는 사람 중에서도 이러한 성향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 ...
- [16호]노마드 조각가 이영섭 (3)고달과 수유너머로 이어진 긴 여정속에 참으로 많은 인연의 끈을 만들고 함께했던 동료이자 절친인 이영섭 작가와의 만남은 다른작가들과의 만남과는 틀린 또다른 의미가 존재했었다. 오래전 첫만남이후 몇해가 흘러 여주 산속에 있다는 소식을 직접 전해듣고 다시만난 이후 작업뿐아니라 서로의 깊이있는 인생고민까지 많은부분을 공유하고 나눴기에.. ...
-
루소의 을 읽다 보면 흥미로운 구절이 나온다. 루소는 인간 유형을 자연인과 시민으로 나눈다. 자연인이란 ‘자기 자신이 전부인 사람, 그 사회의 구성원인 동시에 전체’인 사람이다. 자신의 판단에만 의존하는 절대적인 존재이다. 그에 반해 시민은 사회라는 전체와의 관계에 의해서 가치가 정해지는 상대적 존재이다. 이는 근대 국가에서 학교가 만들어진 배경과도 일치한다. ...
-
온갖 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따뜻한 봄기운이 완연한 5월이 되면 생각이나는 작가 한사람이 있습니다. 상처많았던 가슴을 술과 작업으로 토해내고,그 힘겨운 외로움을 안고 살아갔던 작가. 술을 마시면 굽이굽이 이어진 밤길을 걷고 또 걸어 집으로 돌아가는 그를 이해하기 쉽지않았지만 나중에 작업실에 가서 작품들을 보고 그 행위가 작업의 중요한 모티브이자 행위의 일부였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
-
아내가 집 나간 줄도 모르고, 장난처럼 이혼을 선언한 남자가 후배와 함께 아내를 찾아다니는 좌충우돌의 코미디 은 일견 ‘남자들끼리 놀고 자빠진’ 상황을 그린 버디무비이거나, ‘그녀를 하나도 모르고 있었네’ 를 깨닫는 로드무비 성장담쯤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은 이성애와 결혼의 가치를 부인하는 은폐된 퀴어 영화로, 성 정치적 전복성을 지닌 텍스트이다. ...
- [15호]동심을 일깨우는 詩들 (4)스무 살 무렵 내가 살던 동네엔 헌책방이 많았다. 가난했지만 정이 넘치던, 그 동네엔 유난히 책에 목숨 건 이들이 많았다. 동네 끝에 위치한 조그만 복지관에선 매주 독서 토론 모임이 열렸다. 노동자, 시인 지망생, 헌책방 주인, 앳된 직장 여성, 늙수레한 아저씨 등이 오래된 난로가 품어내는 온기에 의지해 머리를 맞대고 조잘거리곤 했다. 카잔차키스의 조르바를 만난 곳도, 박노해를 깊이 읽게 된 것도 그 곳을 통해서였다. ...
-
누군가 거대한 탑에서 돌멩이 하나를 빼낸다. 탑은 끄떡도 하지 않는다. 그 모습을 나는 바라보고 있다. “너무 나대는 것 같아요.” 1학년 남학생반 수업시간이었다. 국어시간에 대안교육 잡지 에 실린 김예슬 선언을 읽어주고 어떤 느낌이 드는지를 묻는 질문에 한 아이가 이렇게 대답을 했다. 그 아이의 표정은 장난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복잡해 보였다. 내가 받은 인상은 그랬다. ...
- [15호]광주 / 이성부 (0)"나는 광주가 참 좋아요." 두해전 5월이었다. 광주역 앞. 기차를 기다리던 나는 가슴팍으로 짱짱하게 파고 드는 남도의 햇살을 쬐이면서 중얼거렸다. "만약에 서울을 떠나면 광주에서 살고 싶어요." "왜요?" 옆에서 물었다. "따뜻하니까, 뜨거우니까, 맛있으니까" 내게 광주는 온통 뜨겁고 따스하고 맛깔스런 기억 뿐이다. 열아홉 어느 날, 명동성당 앞에서 삭발한 모습으로 거리선전전을 펼치던 조대생 언니를 보았다. ...
- [14호]그후 / 정일근 (7)"저는 혼자 살아요" "결혼.... 안 하셨나봐요?" "해봤어요" 영화 < 봄날은 간다>에 나오는 상우(유지태)와 은수(이영애)의 대화다. 신선했다. 여자주인공의 이혼을 심각하지 않고 덤덤하게 그렸다. 심지어 ‘해봤어요’ 할 때 은수가 능력자로 보였다. 결혼도 해보고 이혼도 해본, 그래서 삶의 다양한 세계와 접속한 강자 말이다. 10년 전, 이 영화가 나올 때만 해도 이혼에 대한 세간의 인식이 부정적이었는데 ...
-
는 좀비영화의 대부 조지 로메로의 (1973) 리메이크작이다. 바이러스로 마을 사람들이 미쳐서 서로 죽인다는 설정만 보면 ‘좀비가 나오지 않는 좀비영화’ 쯤 되겠다. 하지만 의 진정한 공포는 ‘미친 사람들’이나 ‘괴(怪)바이러스’에 있지 않다. 살을 뜯어먹는 좀비보다 총을 든 인간이 더 끔찍하진 않으며, 확산양상이나 증상에 일관성이 없는 바이러스는 정체성이 약하다. ...
- [14호]소통의 힘 (2)지난 일요일 오후, 신촌에 모임이 있어 다섯 살 난 딸아이를 데리고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나들이를 다녀오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충무로 역에서 지하철을 갈아탔는데, 우연히 두 자리가 비어 있어 얼른 자리를 잡고 앉았다. 지하철 안은 평소와는 다르게 약간 소란스럽게 느껴졌다. 봄나들이 다녀오는 아이들과 부모들의 이야깃소리 때문이겠거니 하고 앉아 있는데, 유독 눈에 띄는 아이가 있었다. ...
-
얼마 전, 아버지 꿈을 꾼 적이 있어. 딩동. 벨 소리가 났는데 거실에 앉아 있는 식구들 누구도 문을 열려고 하지 않았어. 딩동, 또 다시 벨 소리가 났어. 마지못해 문 앞으로 다가가 구멍으로 밖을 내다 봤더니, 아버지가 서 있었어. 식구들을 향해 귀신이라도 본 듯 소리쳤지. “아버지가 왔어, 아버지가!” 내 이야기를 들은 그 누구도 아버지를 맞으러 달려가지 않았어. 서로 끌어안고 벌벌 떨기만 했어. ...
-
올해 가장 화제를 모은 드라마는 단연 이다. 조선 인조때를 배경으로 노비를 비롯한 천민들의 생활을 그린 사극으로, 명품 근육을 자랑하는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TV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세련된 카메라 앵글과 공들인 OST로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의 기본 골격은 추노꾼과 노비반란 세력을 통해 본 신분질서의 모순과 소현세자 죽음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 등으로 요약될 수 있는데 ...
-
오늘날 성은 억압되어 있는가? 아니다. 오히려 부추겨지고 있다. 조 단위의 매출을 자랑하는 육체산업과 연예산업은 ‘성을 즐기라’는 복음을 전파한다. 그러나 성의 즐거움은 고사하고, 성적 존재라는 사실조차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장애인들이다. 오랫동안 성적 권리는 이성애자 성인남성의 전유물이었지만, 이후 여성, 동성애자, 노인과 청소년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
-
고미 타로는 꽤 유명한 그림책 작가다. 그림은 발랄하고 경쾌하고 단순하며, 글은 깔끔하나 정곡을 찌른다. 해서 고미 타로의 책을 읽다 보면 “어?” 하는 사이에 뒤통수를 한 방 맞는 기분이다. 더 희한한 건 맞고 나서도 실실 웃음이 비어져 나온다는 것. 까불대는 막내처럼 보이나, 속에는 참으로 깊고 따듯하고 날카로운 어른 서너 명쯤 도사리고 있을 것 같은……
-
1997년에 첫 발령을 받은 학교는 실업계 고등학교(지금은 전문계 고등학교라고 부른다.)였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많은 이곳에는 구제금융 위기 이후 타격이 무척 컸다. 경제적 타격은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상처를 남겼다. 2000년에 2학년 여학생반 담임을 맡았다. 한 아이가 자퇴를 하겠다고 했다. 아버지, 어머니가 돈을 못 버시는 상황이고 동생들이 많다고 했다. 형편이 어려워지니까 부모님이 맏이인 자신에게 학교 그만두고 일해서 집안을 도우라고 하셨단다. ...
-
소싯적부터 눈물이 많았는데 아줌마 되니까 더 궁상이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면서 혹은 음악을 듣다가 찡해서 눈물짓는 일 다반사다. 사진을 보고 울어본 적도 있다. 딱 두 번이다. 뭐 울었다기보다 핑하니 뜨거운 것이 고였다가 흘렀다고 해야 맞겠다. 둘 다 좋아하는 선배가 찍은 사진이다. 한 번은 한대수선생님 흑백사진. 홍대 연습실에서 취재를 마치고 뒷풀이 가는 길, 뒤따라가다가 우연히 찍은 컷이다. ...
- [12호]사랑스러운 뇌 (3)아파트라는 공간은 참으로 이기적이고 외로운 공간인 것 같다. 쓰레기를 버리고, 방을 따뜻하게 데우고, 먹고 자고 싸는 것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는 정말 편리하지만 그것이 오로지 나만의 이로움을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기적인 공간이다. 한편 주변에 누가 사는지 전혀 모르고 지내다보니, 가족이 아닌 다른 누군가와 따뜻한 대화를 나누기가 그 어느 곳보다 어렵고 벅차다는 점에서는 그야말로 외로운 공간이다. ...
-
당신이랑 나랑 싸운다 치자. 열 받아서 서로 욕도 하고 발길질도 한다. 너 같은 놈하곤 다신 상종도 안할 거라고, ‘죽어버려라’ 시원하게 욕지거리를 하고는 눈탱이밤탱이 된 눈 부여잡고 병원에 갔다. 근데 이게 어찌된 일인지 치료 받다가 내가 죽어 버렸다. 당신이라면 무슨 생각이 들겠는가? ‘개 같은 놈, 잘도 뒈졌네!’ 하고 시원해 할까? 아마 아닐 거다.(아닐 거라고 믿는다;;) ...
-
라니! 아동 도서에서 이처럼 파격적인 제목을 찾기도 아마 쉽지 않을 게다. 이 책은 장애인과 안락사라는 첨예한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이 책이 돋보이는 점은 섣부른 충고나 교훈을 주절주절 늘어놓기보다는, 그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사랑하지만 아들의 최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아빠, 중증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한 끈을 놓을 수 없는 아들 ...
-
봄을 겨울로 살았다. 2월에 스위스에 다녀오고 달력을 두 장이나 넘겼다. 그런데도 내도록 얼얼했다. 알프스의 눈이 녹지 않았고 그 위로 서울의 봄눈이 쌓였다. 책상에는 컨베이어벨트처럼 할 일이 끊임없이 돌아왔다. 순간이다. 글 쓰는 일이 글을 해치워야 하는 노동이 될 때가 있다. 제일로 마음 슬프다. 자본가세상 살찌우는 글은 안 쓰고 싶은데 그러면 자본가세상에서 살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진다. ...
-
지난 몇 개월 동안 내 활동의 주요 공간은 W-ing이었다. 재작년, 연구실 학술제 주요 행사였던 ‘현장인문학 워크샵’의 인연으로 그곳에서 강의도 하고 행사 때마다 얼굴도 비치곤 하다가 우연찮게 좀 더 가깝게 사귈 기회를 얻었던 것이다. W-ing은 탈성매매 여성들을 위한 쉼터와 자활훈련작업장, 그리고 그룹 홈과 임대주택을 포함한 주거공간이 있는 곳이다. 여기서 ‘친구들’은 함께 생활하고 공부하고 일하면서 지낸다. ...
- [11호] 나, 나를 만나다 (2)예전 근무했던 학교에서 3년 동안 함께 생활했던 아이였다. 이 아이는 1학년 때 몸이 무척 아팠다. 아이는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부모님과 의사 선생님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가 자는 줄 알고 나누는 대화는 아이의 생존 가능성 여부에 관한 것이었다. 시간이 흘러 다행히 건강을 되찾았다. 앞으로 비슷한 상황이 되풀이 된다면 삶이 끝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퇴원을 했다. ...
-
여성암 무료검진을 받으라는 통지서가 서울시에서 왔다. 작년 가을 즈음에. 기한이 12월 31일까지였다. 병원 가는 일이 좋을 리 없다. 특히 산부인과. 애 낳고 병원을 한 번도 안 가봤다가 암에 걸려 돌아가신 김점선 화가를 생각했다. 또 무료 건강검진을 받지 않다가 암에 걸리면 보험 혜택이 없다는 얘기도 들린다. 8년 전 애 낳고 진료실 출입이 1회도 없었던 나는, 아직 에미의 손길이 필요한 어린 새끼를 둔 나는, ...
-
는 로 1992년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이탈리아의 가브리엘 살바토레 감독의 최근 작이다. 이탈리아 최고 권위의 문학상을 받는 작가 니콜로 아망티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로, 2009년 모스크바 국제 영화제 비평가상을 수상하였다. ...
-
‘幸福’ 조그만 소리로 읊조려 본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거릴 수가 없다. 그럼 나는 지금 불행한가? 딱히 그렇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불행하지도 않고 행복하지도 않다면, 그럼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그걸 때때로 잊고 산다. 시선은 늘 행복을 향하고 있지만, 발은 항상 더디 움직여 그런가? 이번에는 ‘行福’이라고 바꾸어 써 본다. 복을 향해 걸어가기. 복을 향한 적극적인 몸짓. ...
-
오래전 불교학생회에 나갈 때 운경 큰스님으로부터 받은 법명을 서예를 시작하면서 호로 대신해 사용하는 각심은 서예 말고도 전각,서각,수석에서 LP판,오디오,차(茶),사진 등등 여러 가지에 능통해 가끔 모르는 질문이 나오거나 하면 명쾌한 답을 던지고 진지한 농담도 자주해 주변을 즐겁게 해주는 입담꾼이기도 합니다. 특히,사진에 관심이 많아 언제나 카메라를 옆에 끼고 궁금한게 있으면 물어보고 ...
-
양평군 지평면 곡수리에는 두 자녀를 두고 조각을 업으로 평범하게 살아가는 조각가가 있습니다.하지만 면면을 살펴보면 그렇게 평범하지는 않는거 같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몇 년을 인도로 가 명상과 공동체생활,히피로 떠돌며 자유로운 영혼을 갈구하며 살았고 인도로 여행온 일본인 부인과의 운명적만남, 다시돌아온 한국에서 작업을 하겠다고 자리잡은곳이 여주산골짜기에 컨테이너박스. ...
-
장사익의 노래 은 모성의 지극함을 보여준다. 꽃구경 가자는 말에 입이 헤벌어져서 아들 등에 업힌 노모는, 숲속 깊숙한 곳에 들어서자 꽃구경이 그냥 꽃구경이 아님을 직감한다. 노모는 순간 너무 놀라 말을 잃고 눈조차 감아버린다. 하지만 곧 정신을 추스르고 아들을 위해 솔잎을 따서 길에 뿌린다. 헨젤과 그레텔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빵조각을 뿌렸듯이, 노모는 아들의 귀환을 염려하며 솔잎을 뿌린다. ...
- [10호] 달의 몰락 / 유하 (2)다친줄도 모르다가 피를 보면 이내 울어버리는 아이처럼, 난 3월 하순부터 달력을 힐끔거리면서 나를 연민했다. 3월 24일은 딸이 태어난 날이고, 28일은 아들이 태어난 날이다. 해마다 3월이 되면, 날씨도 마음도 뼛속도 스산해진다. 배위로 트럭 3대가 지나가는 것 같던 아득한 통증의 부활. 한 명이 3대씩, 총 6대가 올해도 몸 위를 덜컹거리며 지나갔다. 거기에다 새학기 스트레스가 더해졌다. ...




최근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