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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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i31
    프랑스에서 노동 문제만큼 복잡한 문제도 없다. 프랑스인과 노동의 관계만큼 뒤틀린 관계도 없을 것이다. 안달루시아, 알제리, 나폴리에 가보라. 그들은 노동을 아주 경멸한다. 독일, 미국, 일본에 가보라. 그들은 노동을 숭배한다. 사태가 변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일본에는 오타쿠(otaku), 독일에는 기꺼이 실업자가 된 사람들(frohe Arebeitslose)이 넘쳐나고 반대로 안달루시아에는 일중독자(workholics)가 넘쳐난다.
  • rp31
    21세기의 첫 십년 동안 네그리(A. Negri)와 하트(M. Hardt)는 통상 ‘제국 3부작’이라고 불리는 3권의 책, (2000), (2004), (2009)를 펴냈다. 이들의 작업, 특히 새로운 밀레니엄의 첫 해에 출간된 은 엄청난 주목을 받았고 또 그만큼이나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설령 ‘운’에 불과할지라도, 어떤 ‘때’가 닥쳤을 때 그것을 오랫동안 기다려온 것처럼 낚아채는 책들이 있는데, 도 그런 책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다.
  • 8995576332_1
    수유너머N이 있는 북 아현동은 장마가 끝나자 마자 재개발이 될 것이다. 연구실이 이사 온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또 다시 이사 갈 준비를 하고 있다. 마을버스를 타고 올라가는 길에는 지은 지 30년쯤 된 건물들에서부터 갓 지은 건물들까지 용도, 종류가 다양한 건물들이 빽빽이 들어차있다.
  • ‘여삼추如三秋’라는 말. 네가 없으니 하루가 삼 년 같아. 헤어져 있는 잠시 동안이 아주 길게 느껴진다는 뜻으로 ‘여삼추’라는 말을 한다. 이 말이 시경 왕풍 「채갈采葛」이라는 시에서 나왔다. 칡 캐러 가세 하루를 못 보면 석 달을 못 본 듯··· 쑥 캐러 가세 하루를 못 보면 삼 년을 못 본 듯··· 단어가 몇 개 쓰이지도 않은, 그나마 반복되는 구절이 많은, 단순한 이 시가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주는 까닭은 뭘까?
  • 지난 4월 의 저자 마츠모토하지메가 서울을 방문했을 때 만든 삐라.
    “시민경계위원회(CVC, comité de vigilance citoyen)”에서 온 선생들이 20시[20-Heures, 저녁 뉴스]에 출현해서 누군가 자기 학교를 태워버렸다고 질질 짜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어렸을 때 얼마나 그런 일을 자주 꿈꾸었던가를 생각한다. 또 우리는 껄렁껄렁한 젊은 애들이 길거리 지나가는 사람을 부르거나, 진열대의 상품을 훔치거나, 자동차에 불을 지르거나, 경찰기동대(les CRS)와 술래잡기를[검거를 피하며 경찰을 농락] 하는 것을 본 좌파 지식인이 욕설을 내뱉는 것을 들으면서, 1960년대의 검은 잠바들[불량배들], 아니 그보다는 “아름다운 시절[벨 에포크, Belle Époque]”에 아파치들(apaches)을 향해 내뱉던 말들이 떠오른다...
  • 354_데리다3
    데리다는 시종일관 경계의 문제를 자기 사유의 주제로 삼았던 철학자다. 경계란 세계에 어떤 구별을 도입하는 것, 구별짓기를 통해 질서와 위계를 설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다시 경계의 이편과 저편, 내부와 외부를 나누고, 거기에 권리나 자격을 할당한다는 점에서 정치적이지 않을 수 없다. 랑시에르 식으로 말해 경계짓기는 대개 치안(police)으로서 정치를 정초한다. 개인적이고도 집단적인 정체성의 여러 표지들, 곧 인종과 민족, 국적, 성별 등의 차별의 분할선들이 그렇게 만들어진다. 데리다의 문제 설정은 경계가 경계로서 내세우는 권위의 원천이 우연스럽고 자의적이라는 데 있다...
  • 당신은 효자입니까? 세상에 효자가 어딨냐? 부모 입에서 효자가 나는 거지. 요즘은 참 효자가 없는 것 같다. 효자는커녕 부모 자식 간에는 원수 안 지면 다행이라고도 한다. 시경 패풍에 나오는 「개풍凱風」이라는 시는 효도에 관한 시이다. 거참 효도라니! 관계가 부재한 현대인들에게 효도라는 말은 참으로 뜬금없어 보인다. 그러나 정말 효도는 시대착오적인 고리타분한 도덕에 불과한 것일까?
  • 2008년 프랑스 파리 이민자 시위
    비상사태(l'etat d'urgence)를 선포하고 열다섯 먹은 애들과 맞서 싸우는 정부. 자기 안전(salut)을 축구팀에 맡겨 둔 나라. 병원 침대에서 자신이 “폭력”의 희생자였음을 부각시키는 경찰. 나무로 [겨우] 집을 지은 사람들에게 강제명령을 내리는 도지사. 장난감 대여소에 불을 지른 혐의를 받은, 셸르(Chelles)에 사는 열 살 먹은 두 아이. 이 시대는 상황의 어떤 기괴함(grotesque) -매 번 빠져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기괴함-을 놓고 볼 때 참으로 탁월한 시대다. 불평과 분노를 담은 어투로 미디어들은 이런 뉴스를 받아들일 때 터져 나올 웃음소리를 억누르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할 것임에 틀림없다.
  • 09055837_001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고 있는 친구들에게서 가끔 전화가 오곤한다. 이들의 하소연에는 다음과 같은 공통적인 말이 붙는다. '뭐랄까. 잘못된 건 없는 데 뭐가 잘못된 느낌이라고 할까. 내가 내가 아닌 것 같다고 할까. 좀 허무하다고 할까' 대학교 4년 내내 목숨을 걸어가며 준비한 끝에 대기업에 들어간 친구들도 곧잘 이런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 jj01
    지금까지 슬라보예 지젝은 주로 프로이트-라캉 정신분석학의 개념으로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잡다한 대중문화 현상을 재기발랄하면서도 철학적으로 분석하는 비평가로만 알려져 왔다. 하지만 그의 본령은 정신분석학의 신학적 사유를 통해 난쟁이처럼 왜소해진 맑스의 역사유물론을 구원하고자 하는 정치신학에 있다. 정치신학은 노모스(법)의 질서를 수립하는 정치학에 신학의 ‘외부’ 개념을 도입하여 법 바깥의 영역에서 정치와 혁명의 동력을 찾는 실천이론이다. 들뢰즈와 푸코가 비판적으로 지적한 것처럼 정신분석학은 근대의 세속화된 유대-기독교 신학이다. 지젝은 정신분석학의 신학적 사유구조를 한계가 아니라 현실정치의 외부를 발견하는 돌파구로 본다...
  • 시경 위풍에 나오는「기욱淇奧」은 유가의 이상적 인간형-군자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이미지를 만든 시이다. 군자는 바위에서 보석을 만들듯이 끊임없이 학문과 인격을 수양하는 사람. 절차탁마하는 사람이다. 이 시에서 절차탁마切磋琢磨라는 말이 나왔다. 절차탁마? 각진 턱을 깎아서 갸름하게 만들고[切], 뭉툭한 코를 오똑하게 세우고[磋], 쌍꺼풀을 만들고[琢], 얼굴의 주름을 펴서 피부를 매끈하게 만든다[磨]?
  • 28_ci01
    “나인 것(CE QUE JE SUIS)”, 그게 뭔데? 젖, 냄새들, 이야기들, 소리들, 감정들, 어릴 적 동요들, 물질들, 몸짓들, 생각들, 인상들, 시선들, 노래들, 익살들의 흐름을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쭉 관통해왔다. 나란 뭐냐고? 내 모든 부분들이 이러저런 장소들, 고통들, 조상들, 친구들, 연인들, 사건들, 언어들, 기억들, 분명히 나는 아닌 그런 모든 것들과 연결되어 있다.
  • PiAdornoTW1
    우울과 허무주의는 철학에서 언제나 끈질기게 따라붙는 물귀신 같은 것이었다. 철학뿐만이 아니다. 그리스 시대의 비극을 포함해서 모든 예술작품은 그것이 허무와 구원의 문제로부터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어째서 그럴까? 어떻게 ‘허무주의’는 하나의 ‘~주의’로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일까? 그것은 길바닥에 앉아 한탄하는 자들을 가리켜야 할 것이 아닌가? 우울과 절망이 어떻게 철학자의 사유의 원동력이 되는 일이 발생할 수 있었던 것일까? 아도르노의 책 가 그렇다. 어찌보면 이 책은 우울과 절망으로 점철된 염세주의자의 책이라고 볼 수도 있다. 밑도 끝도 없는 어둠이 깊이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 312_발리바르
    근래 들어 다시 번역되기 시작한 발리바르의 저작들은 그에 대한 기존 이미지를 상당히 불식하고 있다. 19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중반까지 발리바르는 맑스주의가 처한 위기의 극복을 모색하는 맑스주의자로서 면모가 강했다. 의 역자해제에서 진태원에 따르면 그는 “자본주의 분석을 위한 탁월한 지침이자, 프롤레타리아트독재의 이론가”로 수용되어왔다. 하지만 근래 번역되기 시작한 그의 저작에서는 그런 작업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역시 진태원의 지적처럼 “이 책(-인용자)에서는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을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프롤레타리아독재에 관한 논의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고 하겠다...
  • Agamben
    정치란 지오르지오 아감벤(G. Agamben)에게 있어 기본적으로 삶 내지 생명과 관계된 것이다. 미셸 푸코 이래로 근대정치를 생명의 정치로 부르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아감벤의 시각에서 보자면 우리는 고대로부터 서구 정치 일반이 생명의 정치 내지 삶의 정치였다고 말할 수도 있다. 서구에서 정치란 기본적으로 권력과 삶이 마주치는 장소에서 정의되어왔기 때문이다.
  • ‘전전반측輾轉反側’이라는 말이 시경 「관저關雎」에서 나왔다. 아니 도대체 왜! 밤에 잠이 안 온다는 것일까. 하루종일 고달프게 일한 사람에게는 이해가 안 되는 일이다. 낮에 빈둥거리고 놀기만 하니 밤에 잠이 안 오는 거 아냐? 아니면, 요즘처럼 날씨가 무더워서? 하지만 이 시에서 전전반측하는 건 백수의 직업병도 아니고 열대야 때문도 아니다. 그리움 때문이다. 어디에 있을까 나의 반쪽은? 군자는 요조숙녀를 찾아 헤맨다. 그러나 짝 만나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찾아도 만나지 못하니 밤새 잠 못 들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이 시에서 전전반측은 이렇게 짝을 만나지 못한 싱글의 고독한 몸부림이다.
  • 나는 나다” -리복(Reebok)의 광고
    “나는 나다.” 이것은 세계에 대해 마케팅이 내놓은 최후의 것이자, 달라지기를(être différent), 자신만의 색채를 갖기를(être soi-mê̂me], 펩시를 마시기를 자극하는 온갖 부추김에서 아주 많이 나간, 광고의 진화 중 최종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수십 년이 걸려서 개념들은 바로 이 순수한 동어반복에 도달했다. 나=나(JE=JE). 그는 헬스클럽에서 거울을 보며 런닝머신(트레드밀) 위를 달리고 있다. 그녀는 스마트카를 몰고 퇴근을 한다. 과연 그들이 서로 만날 것인가?
  • 276_이웃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정신분석학은 신학적이고 가족주의적이다. 정신분석학은 세상을 ‘하느님 아버지’에 대한 사랑으로 유지되는 가족 질서로 본다. 욕망의 원초적 금지자로서의 아버지, 욕망의 원형적 대상으로서의 어머니, 아버지의 법을 내면화한 아들(남자)과 그것을 선망하는 딸(여자)로 구성된 외디푸스적 가족. 이 가족주의적 신학의 구도는 정치적으로 주권-사법적 질서로 구현된다. 아버지는 대지에 노모스(율법)를 선포하는 주권자이며, 어머니는 법에 포획된 대지의 삶이고, 아들(남자)은 법 바깥으로의 추방을 두려워하면서 법 안에 포획된 신민이며, 딸(여자)은 법의 경계에 있기에 법 안쪽을 선망하는 자유민이다...
  • 시경을 통해 우리는 역사 기록으로는 모두 전하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눈물과 한숨과 그 속에서도 끊이지 않는 웃음과 작은 설레임들을 만난다. 문서로는 다 전하지 못하는 ‘문서의 바깥’을 만난다. 동산에 가서 오랫동안 돌아오지 못했네. 나 동산에서 돌아올 때 부슬부슬 비가 내렸지··· 시경 빈풍에 나오는 「동산東山」이라는 시는 주공의 정복전쟁 때 동쪽의 전쟁터에서 서쪽의 고향을 그리워하는 어느 병사의 노래이다
  • 266_1초에+24번의+죽음
    당신은 자신을 시네필이라고 생각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반복 강박의 충동에 사로잡혀있는 건 아닌지 자문해 보아야만 한다. 프랑수아 트뤼포가 영화 사랑의 세 가지 단계를 이야기할 때, 그 첫 번째가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었다는 사실은 시네필의 이러한 특성을 대변하는 것이 아닌가. 반복 관람을 통해 시네필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시네필은 ‘자신만의 영화’를 원한다. 그것이 자신이 존경하는 위대한 감독의 영화라 할지라도, 그들은 나만이 기억할 수 있는 작가적 서명을 발견하고자 하며, 그럼으로써 나만의 영화, 나만의 감독, 나만의 숏, 나만의 편집, 나만의 인물과 배우를 소유하려 한다. 시네필은 자신에게만 특권화된 그 무언가를 찾아내려는 페티시적 욕망으로 충만하다...
  • 263_지그문트+바우만
    바우만에 따르면 우리는 ‘유동적 근대’에 살고 있다. ‘유동적’이란 모든 것이 가변적이고 불확실하여 예측과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는 이런 불확실한 것들을 제거하려는 기획 전체를 근대성으로 정의한다. 일반적으로 근대는 진보와 생산의 시대로 이해되지만, 바우만이 보기에 그런 고정적 근대성(solid modernity)은 필연적으로 부정적 결과로서의 유동적 근대성을 생산한다. 그는 근대의 기획에 따른 엔트로피라고 말할 수 있는 이 유동적 근대성의 형상을 ‘쓰레기’라는 것으로 설명하거니와, 이것은 비단 매일처럼 쓰레기장에 버려지는 투기물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 1
    현 상황에 대한 사회적 해결책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환경들, 제도들, 사람들이 반어적으로 ‘사회(société)’라고 부르는 개별적 기포들(bulles)의 모호한 집합체(agrégat)가 어떤 일관성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공동의(코뮨적, commune) 경험을 설명할 마땅한 언어가 아직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언어를 나누어 갖지 않을 때 사람들은 부를 나누어 갖지도 않는다. 계몽(Lumières)을 둘러싼 투쟁으로부터 프랑스 혁명의 가능성을 정초하는 데 반 세기가 필요했고, 노동을 둘러싼 투쟁으로부터 ‘복지국가(État providence)’를 낳는 데 한 세기가 필요했다. 투쟁들은 새로운 질서를 표현할 언어를 창조한다. 〔그런데〕 오늘날은 이런 일이 일어날 것 같지가 않다...
  •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추네. 동쪽하늘에서도. 서쪽하늘에서도.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추네. 어린 시절 우리가 자주 부르던 노래. 이라는 동요와 비슷한 구절로 시작되는 시경의 노래가 있다. 시경詩經 소남召南 편에 나오는 「소성小星」이라는 시가 바로 그것!
  • 주권의 너머에서
    2004년에 처음 도쿄에 간 일이 있다. 번화가인 신주쿠에서 본 여러 유형의 노숙인들이 인상적이었는데, 부부로 여겨지는 이들, 혹은 한때 번듯한 사회적 지위를 누렸을 것 같은 이들, 뭔가 개인적인 것으로만은 읽을 수 없는 이력들을 흔적으로 갖고 있는 이들이 강한 인상으로 남은 일이 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다시 도쿄에서 한동안 지내게 되어서 신주쿠는 자주 지나다니게 되었는데, 한쪽의 정체모를 조형물들이 늘 의아했다. 그곳은 신주쿠 역 서쪽 출구 지하도였는데, 조야한 색칠을 한 비쭉비쭉한 좀 흉물스런 조형물들이 한쪽 공간을 메우고 있었던 것이다. 앉아서 쉴만한 곳도 아니었고, 어떤 의미(용도)가 있어 보이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공공미술작품이라고는 결코 생각해 볼 수도 없는 조형물이었는데, 훗날 얘기 듣기로는 아니나 다를까 노숙자 추방을 위해 설치한 것이라고 한다...
  • 바디우02
    바디우에게 정치란 근본적으로 국가와 무관한 것이다. 국가가 지배를 위해 권력을 운용하는 활동을 그는 정치가 아니라 ‘관리’라고 부른다. 바디우에게 정치란 이 국가 권력에 의해 계산되지 않는 존재들의 보편적 가치를 드러내고 그것을 선언하는 활동, 다시 말해 혁명적 실천에 걸맞는 이름이다. 이러한 그의 정치관은 사실상 그의 존재론과 깊은 관련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국가란 상황을 지배하기 위해 상황에 속한 요소들을 재현하는 것이라면, 혁명적 정치란 그 재현의 질서에서 배재된 자들을 드러내는 사건이다. 그러나 바디우에게 이 사건이란 그 자체가 발생함으로써 모든 문제를 일소하는 신의 현현(데우스 엑스 마키나)과 같은 것이 절대로 아니다. 사건은 섬광과 같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을 만난 이후 사건에 충실해지는 ‘주체’이다....
  • 25_ci
    어떤 각도에서 접근하든지 현재에는 출구가 없다. 이는 결코 현재의 미덕(능력, vertus)이 아니다. 그것은 간절히 희망을 품고자 하는 이들로부터 모든 지지대를 빼앗아버렸다. 해결책을 쥐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금세 반박되고 있다. 오직 인정된 것은 모든 게 더 나빠지기만 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미래에는 장래〔가망〕가 없다(Le futur n'a plus d'avenir)”는 말은, 극히 정상적인 외모를 가진 채 일급 펑크족의 의식 수준에 이른 우리 시대의 지혜이다...
  • 모과는 좀 특이한 과일이다. 보통 과일 열매들은 예쁘다. 먹었을 때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다. 그런데 모과는 울퉁불퉁 못생겼다. 떫고 신 맛이 난다. 그리고 과육이 단단해서 모르고 덜컥 씹었다가는 턱을 약간 상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어떤 친구는 자동차에 방향제로 놓아둔 모과를 ‘아 맛있겠다’ 하고 먹었다가 눈물을 찔끔! 흘렸다고 한다. 그래? 그렇다면··· 안쪽은 맛있겠지··· 하면서 한 입 더 베어먹었다가··· 왜 이런 걸 차에 뒀냐고 분통을 터뜨렸다고 한다. 모과도 모르나? 그리고 한 번 씹어 보고 아니면 말지 끝까지 하는 기질이라니!
  • 24_ud_03
    최근 국내에서 번역된 발리바르의 저작, < 우리, 유럽의 시민들?>을 관통하는 질문 가운데 하나는 1990년대 유럽의 맥락에서 정치의 가능조건을 다시 묻는 것이다. 역사적 사회주의가 몰락, 제3세계로부터 이주해오는 인구들의 급증, 자본주의 질서의 전지구화, 유럽연합 건설 프로젝트의 구체화라는 정세 속에서 유럽의 정치적 환경은 급속도로 변해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급변하는 유럽의 정세 속에서 인종청소로 불리는 발칸 전쟁이 발발하였다. 동유럽에서 다양한 종족적 동일성을 통합하던 권력형태인 국가가 붕괴로 인해 집단적으로 심각한 동일성의 위기에 처하게 된 자들이 인종이라는 상상적 동일성을 통해 그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였으며, 이를 위해 다른 인종을 자신들을 위협하는 타자로 설정하여 그들에게 잔혹한 폭력을 휘두르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 ci01
    자본주의와 시장 니힐리즘이 지배해온 지난 두 세기는 우리에게 극단적인 소외 -우리 자신으로부터의 소외, 타인으로부터의 소외, 세계로부터의 소외-를 안겨왔다. 개인이라는 허구는 그것이 실재적이 되어가는 만큼이나 똑같은 빠르기로 해체되어 왔다. 메트로폴리스의 아이들인 우리는 다음을 확신한다: 즉 코뮨주의의 가능성은 끊임없이 억눌려왔고 계속 추방되어 온〔푸닥거리를 당해온, cojured away〕, 실존의 가장 극심한(profound) 박탈에 있다는 사실 말이다. 모든 것이 말해지고 모든 것이 행해졌을 때, 그것은 우리가 전체 인류학과 전쟁을 벌이고 있을 때일 것이다...
  • 24_rp_02
    성폭행이 물리적 폭력과 그리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적잖이 당혹스러운 이 말은, 보수꼴통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누구보다 성(sexuality)이라는 범주에 깊은 통찰력을 가졌으며,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이름을 날렸던 미셸 푸코(Michel Foucault)가 이 문제적 발언의 주인공이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성폭행에 관한 법안을 개정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성을 좀 더 중요한 법적 대상으로 부각시키고, 성 범죄를 여타 범죄와 다른 논리로 다루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푸코는 이런 일련의 시도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 랑시에르의 정치철학이 정치적 사유에 기여한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를 ‘치안’과 구별하여 정의한 것이다. 즉 정치는 치안과 그 본성을 달리한다는 테제가 그것이다. 사실 정치라는 말은 사용하는 사람마다 그 의미가 다를 뿐 아니라, 정반대의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정치에 대한 사유가 정치의 개념으로 집약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는 어쩌면 매우 자연스런 것이라고도 할 것이다. 가령 슈미트가 정치에 고유한 것을 명확히 구별하여 ‘정치적인 것’을 정의하려고 했을 때나, 아렌트가 그리스에서 오이코스와 폴리스의 구별을 통해 정치를 정의하려고 했을 때...
  • 『시경詩經』은 지금으로부터 약 3000년 전, 그러니까 중국의 주周나라 때부터 춘추시대 때까지 황하강 유역의 사람들 사이에 구전되던 노래를 공자가 모아서 엮은 책이다. 원래 311편인데 이 중에 6편은 제목만 전하고 내용은 전하지 않는다. 이렇게 시경의 시가 300편 가량 되기 때문에 시경을 ‘시詩’ 혹은 ‘시삼백詩三百’이라고도 부른다. 시경은 쉽게 말해서 노래 책이다. 여기에는 여자들이 불렀던 노래도 있고, 남자들이 불렀던 노래도 있고, 농부가 불렀던 노래도 있고, 전쟁터에 나간 병사가 불렀던 노래도 있다. 각양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이 불렀던 오래된 노래의 책, 그것이 바로 시경이다...
  • 신문을 보다 숨이 턱 막힐 때가 있다. 2009년 용산에서 무리한 진압으로 철거민 다섯 분과 경찰관 한 분이 돌아가셨을 때가 그러했다. 국가 권력에 의해 사람이 죽었지만, 국가 권력은 결코 처벌받지 않는다. 용산 참사만이 아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과잉 단속으로 사람이 죽어나갈 때, 테러범을 잡는답시고 엄한 사람을 폭행하고 증거도 없이 수용소에 가둘 때, 그러고도 당당한 ‘놈’들의 모습을 볼 때, 숨이 막히다 못해 돌아버릴 지경이다. 우리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국가 권력을 고발하고 규탄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 모두가 동의한다. 이제 폭발할 시점이라는 것을. 마치 어제 카페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제는] 의회의 복도에서도 심각하고 조금은 젠체하는 표정으로 그 사실을 인정한다. 위험을 계산하는 것에는 약간의 즐거움이 있다. 이미 우리는 영토를 안전하게 할 예방 조치들의 상세 메뉴를 제공받았다. 신년 축제 분위기는 완전히 변해버렸다 -“내년에는 굴이 없을 거다, 즐길 수 있을 때 즐기라구!” 축하행사가 전통적인 무질서로 완전히 뒤덮이는 것을 막기 위해, 프랑스 내무부장관 알리오-마리(Alliot-Marie)는 36,000명의 경찰과 16개의 헬리콥터를 출동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