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이곳’에서 ‘저곳’과 함께하는 방법 – 생존 그 이상을 상상하는 야숙자들의 월동준비 –

- 신지영

* 이곳 저곳에서 반짝이는 물음, “손수건 있니?”

타테강 집회모습

타테강 집회모습

구소련 강제 노동 수용소로 추방당했던 오스카를 구한 것은 곱고 흰 아마포 손수건이었다. 늙은 러시아 여인은 굶주린 오스카를 집안에 들이고 뜨거운 스프를 내준다. 그가 접시에 콧물을 흘리자, 한번도 사용한 적 없는 흰색 고급 아마포 손수건을 준다. 그리곤 운이 좋다면 너도 집에 돌아갈 것이고 내 아들도 집에 돌아올 것이라고 말한다. 헤르타 뮐러는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문」 ( 「헤르타 뮐러에게 다가가기」, 문학동네, 2009, 38~39쪽)에서 이렇게 말한다. “고운 망사로 테두리를 두르고 섬세한 사슬뜨기로 장식하고 명주실로 장미꽃을 수놓은 그 손수건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그 아름다움은 걸인을 부둥켜안는 동시에 그의 자존심을 다치게 했습니다. 그것은 복합적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고운 아마포로 걸인의 마음을 위로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명주실 사슬뜨기로, 그 흰 눈금으로 스스로의 참담한 처지를 가늠하게 했습니다.-중략-여인은 오스카 파스티오르에게 낯선 러시아 여인인 동시에 ‘손수건 있니?’라고 걱정스럽게 묻는 어머니이기도 했습니다.”

헤르타 뮐러는 이러한 “손수건 있니?”라는 물음은 “모든 국경을 넘어, 형무소와 강제 노동 수용소로 가득 찬 거대한 제국을 깊숙이 뚫고 들어”간다고 말한다. 스탈린주의가 아무리 많은 수용소를 지어 사람들을 재교육시키고 망치와 낫을 휘두른들, “손수건 있니?”라는 물음을 결코 말살할 수 없다고. 이 물음은 삶에 대한 애틋한 희망이자 사랑하는 사람들이 전해주는 마음이다. 삶이 애틋할수록 그렇게 살아내지 못할까봐 강해지는 두려움이다. 이러한 “희망과 두려움의 끈”을 놓아버리고서는 더는 살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손쉬운추방의 결과는 살인, 좀더 상상력을 발휘해봐!

손쉬운추방의 결과는 살인, 좀더 상상력을 발휘해봐!

작년 말부터 올해 초에 걸쳐 도쿄에서는 “야숙자 동료”들을 내쫓고, 점거텐트를 파괴하는 일이 이곳 저곳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타테강 하천부지(竪川河川敷) 스미다강(隅田川) 부근, 아라강(荒川) 하천부지, 경제 산업성 앞 탈원전 텐트, 요요기 공원의 블루텐트…… 여기저기 자본주의의 강제 수용소와 스탈린주의와 망치와 낫이 숨어 있다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배제와 추방의 표지가 붙은 마을의 저항에서는 품위있고 드높은 삶의 상징과 같은 “손수건 있니?”라는 물음들도 반짝거리면서 나타난다. 그리고 깨닫게 된다. 생존을 요구하는 것은 곧 생존 그 이상을 요구하는 것이다. 수용소 속 곱고 흰 아마포 손수건처럼.

* 2월 6일, 블루텐트 마을의 “U씨와 개”

타테강집회모습

타테강집회모습

2월 6일, 활동가이자 야숙자인 오가와씨와 이치무라씨로부터 급박한 메일이 왔다. 요요기 공원 블루 텐트 마을에 살던 U씨가 불을 냈다는 이유로 공원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해 있으니 도쿄도에 항의 전화와 팩스를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U씨는 도쿄도에 몇 번이나 이 명령에 응할 수 없다고 전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화재원인은 불분명하지만 텐트 밖에서 난 불이었다. 아니, 화재 원인이야 어찌되었든, 공원은 도쿄도의 것이 아니라 그곳을 이용하는 U씨를 비롯한 모두의 것이다. 누구도 자기 집에 불났다고 그 집에서 쫓겨나진 않는다. 그런데 왜 이 원인불명의 화재에 책임을 지고 U씨가 공원에서 추방당해야 하는 것일까? 도쿄도는 공원이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 도쿄도 소유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U씨는 블루 텐트 마을에서 9년 째 큰 개와 함께 살고 있는 여성이다. 요요기 공원의 블루 텐트 마을은 300명도 넘는 야숙생활자들이 집결되어 있던 활기찬 마을이었다. 2006년 가을에 야숙자들의 아파트 이행사업이 대대적으로 벌어지고 관리 센터는 얼마 남지 않은 야숙텐트들을 한 곳으로 모으기 위해 대체지역을 마련한다. 이 대체지로 이행할 때 센터 측은 야숙자들에게 강제적으로 계약서에 서명하도록 했다. 이번 퇴거는 그 계약서에 근거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 계약서에는 “자주적인 퇴거”라고 되어 있을 뿐, 강제 퇴거에 대한 문구는 없다. 그럼에도 U씨는 공원에서의 퇴거를 명령받았고, 함께 살던 개는 보건소에 맡겨질 위기에 처해 있다. 오가와씨와 이치무라씨에 따르면 U씨는 시종일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곤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대로 죽을 수밖에 없는 걸까요?”

타테강 집회모습

타테강 집회모습

‘이대로 죽을 수밖에 없는 걸까요?’라는 반문에는 이대로 쫓겨날 수 없다는 의지가 뒤섞여 있었다. 오늘(7일) 16명의 사람들이 모였고 전화와 FAX로 많은 항의가 있어서 8일 퇴거는 일단 막을 수 있었다고 한다. 당장 추방 명령에 직면한 타테가와와 아라카와의 사람들까지도 달려와 주었기 때문에 U씨는 힘을 얻고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복지과에 가도 개와 함께 들어갈 수 없다고 했어요. 보고서에 응하지 않겠어요. 나는 절대로 움직일 수 없어요” 그리곤 이 뜻을 U씨 자신이 직접 쓴 문서로 전달했다고 한다. 그 문서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서약서는 스스로 작성한 것이 아닙니다. 8일 강제 퇴거 철회를 요구합니다.” 이어서 U씨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저 아이(개)와 함께할 겁니다. 마지막까지”라고 말했다고 한다. U씨는 내일(2월 8일) 현지 조사를 앞두고 있다.

나는 U씨와 만나본 적이 없다. 그러나 오가와씨와 이치무라씨의 메일을 통해서 그녀를 구체적으로 느끼기 시작한다. 9년간 블루텐트 마을에서 개와 함께 삶을 가꾸어 온 그녀. 그녀는 단지 생존을 위해서 싸우고 있는 것일까? 개와 함께라면 들여보내줄 수 없다는 복지부 사람들 앞에서, 개와 함께가 아니라면 들어가지 않겠다고 하고, 살아온 곳에서 움직일 수 없다고 외치고, 2006년의 계약서가 강제에 의한 것이었음을 자필편지로 쓰는 그녀. 이러한 그녀의 몸짓 속에는 오랜 시간 동안 공원의 동료들과 개와 생활하면서 그녀가 소중하게 느끼고 만들어 온 ‘생존’ 이상의 관계, 곱고 흰 아마포 손수건을 닮은 무엇인가가 느껴진다.

* 2월 1일, 타테강(竪川) 하천부지 A씨의 속도

타테강 집회모습, 생명을 옮기는 야숙자

타테강 집회모습, 생명을 옮기는 야숙자

“공원 봉쇄를 당장 풀어라!” “야숙자를 추방하지 말아라” “살 권리는 평등하다” 요즘 고토구(江東区) 구청 주변의 아라강(荒川), 타테강(竪川), 스미다강(隅田川)의 야숙자 거주 지구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다. 최근 고토구의 하천 부지가 재개발됨에 따라서 야숙자들에 대한 배제가 노골적으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위협에 처해 있는 것은 타테강 주변이다. 고토구의 <물가와 녹지과> 과장인 아라키(荒木)는 “주민이 불안을 느끼기 때문에 배제되어도 당연”하다는 이유로 1월 27일 다수의 경비원과 작업반을 동원하여 공원의 1/3을 봉쇄했다. 봉쇄된 지역은 타케강 하천부지공원의 가메지마 다리(亀島橋)에서 고노(五の)다리 사이의 야숙자들이 주로 살고 있는 “다목적광장(多目的広場)”의 일부이다. 철조망 안에는 여전히 야숙자 15가구가 살고 있다. (http://www.youtube.com/watch?v=T-cEyuiIg8Q http://www.youtube.com/watch?v=xkkRK7dWyEk) 야숙자들은 정말 무서운 건 자신들이 아니라 폭력을 휘두르고 데마를 흘려 야숙자들이 소년들의 습격대상이 되게 하는 고토구라고 말한다.

구청은 야숙자를 배제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그 약속을 전제로 야숙자들은 공사에 방해가 되지 않는 이전지로 거주지를 옮겼다. 그러나 현재 강제적인 봉쇄와 추방이 일어나고 있다. 실은 이 개수공사가 야숙자를 추방하고 민간기업에 하천부지와 공원을 팔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고토구는 “공사 후에는 공원 야숙자를 제로로 한다”는 취지 하에 ‘어떻게 하면 야숙자가 살기 어려운 공원으로 할 것인가’라는 대책 문서도 만들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천부지 중 일부는 작년 7월 31일 카누와 카약 연습장을 운영하는 사기업에게 위탁되었고, 앞으로 미니 축구장 사업자에게도 위탁할 예정이다. 공사가 진행되는 8개월간 수시로 야간 경비원이 들이닥쳐 텐트를 들추고 손전등을 얼굴에 가져다 대곤 했으며 작년 10월에는 아라키 과장이 직접 사복경관 20명과 함께 들이닥쳐 야쿠자와 같은 말투로 “니들 내가 바본줄 알아?” “배짱도 좋네”등의 공갈 협박을 했다. 결국 12월 22일에는 15개의 텐트에 <변명 기회 부여 통지서(弁明機会付与通知書)>를 발행하고 1월 27일에는 철조망 봉쇄했으며, 1월 30일에는 이전지로 옮기지 않았던 1개 텐트에 행정대집행 고지서를 발행했다.

현재 코도구(江東区)에 의한 타테가와 하천부지 공원에서의 야숙자 강제추방에 반대하는 항의 서명이 진행중이다(서명방법은 다음의 사이트를 참조->山谷ブログ-野宿者・失業者運動報告 http://san-ya.at.webry.info/) 요구사항은 공원 봉쇄를 철회할 것, 야숙자에 대한 폭력에 사죄할 것, 행정대집행을 멈출 것, 야숙자에 대한 유언비어를 퍼뜨리지 말 것, 거짓 약속을 하고 불시에 추방명령을 내리지 말 것, 공공공간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내쫓고 스포츠시설로 만드는 것을 그만둘 것. 요구사항을 보면 이들의 저항은 “야숙자=위험세력=폭력과 차별의 대상”이라는 인식에 대한 저항임을 알 수 있다.

타테강 집회모습 - 약자에 대한 괴롭힘을 멈춰라

타테강 집회모습 - 약자에 대한 괴롭힘을 멈춰라

2월 1일 항의 데모 때에는 집회인원보다 더 많아 보이는 경관, 경비원 그리고 사진을 찍어대는 공안들의 숫자에 깜짝 놀랐다. 그러나 참여자 한명 한명의 목소리에서 결연함이 느껴졌다. 바로 며칠 전 야숙자 동료들이 폭력으로 부상을 당하고 피투성이가 되고 통로를 차단당했던 것이다. 참여자 중에는 요요기 공원에서 온 오가와씨와 이치무라씨, 24일부터 강제퇴거 명령 위기를 넘긴 <경제산업성 앞 탈원전 텐트광장>의 소노씨와 히마와리씨, 타테강 근처의 아라강과 스미다강 주변의 야숙자들과 활동가들이 뒤섞여 있었다. 3월 11일 이후 일본 전역에서 확산된 점거 텐트가 야숙자 운동과 결합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타테강 주변은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단촐한 고층 임대 아파트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작은 집집마다 널린 빨래가 울긋불긋 바람에 휘날렸다. 그때 그 속에서 주민들이 나타나 손을 흔들었다. 우리도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주민들이 야숙자들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주민의 안전을 위해서 공사를 강행해야 한다는 구청의 이유는 거짓말이었다. 야숙자들과 활동가들에 따르면 이곳 주민들과 야숙자들 사이에는 인사를 하거나 의류나 먹을 것을 받는 등의 관계가 형성되어 왔다고 한다.

생존은 그 삶을 둘러싼 주변과 긴밀한 관계를 맺을 때 가능해진다. 공원에서의 삶이 중요한 것은 그곳에서라면 야숙자들이 서로를 돌봐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야숙자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의 규칙과 리듬을 만들어 살 수 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2006년 요요기 공원의 행정 대집행으로 인근 임대 아파트로 들어갔던 야숙자들은, 공원에서 서로 맺고 있었던 보살핌의 관계를 가질 수 없게 되자 알콜중독이나 도박, 우울증에 심각하게 노출되었다. 타테강 근처의 야숙자들도 이대로 행정 대집행이 강행될 경우 일년간 집세가 면죄되는 아파트를 제공받는다. 「타테강 하천부지공원 노상생활자 자립지원사업」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일년 이후의 삶이 막막할 뿐 아니라 입주권은 심히 제한된다. 더구나 구청 직원이나 위탁민간단체(新栄会)가 입주자의 허가 없이 집에 들락달락하는 것을 허가하는 등의 굴욕적인 계약을 강요당하고 있다.

야숙자의 생활수단인 빈깡통과 사과박스로 만든 선전도구

야숙자의 생활수단인 빈깡통과 사과박스로 만든 선전도구

생존을 요구하는 야숙자들의 몸짓은, 단순히 생명을 연명하는 것이 생존이 아니라 주변의 동료 및 자연과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 생존임을 보여준다. 행정대집행 통보를 받은 A씨는 60대 중반으로 몸상태가 좋지 않다. 그가 요구하는 것은 자신의 페이스대로 이사하는 것이다. A씨의 요구는 일률적인 ‘생존’이 아니라, 각자의 속도에 맞게 이동하는 것이 생존임을 주장한다. 삶에 대한 희망과 관계에 대한 두려움과 같은 다채로운 감정을 느끼면서 서로에게 “손수건 있니? 밥은 먹었니? 잘 잤어? 파티 할까” 등을 묻고 계획을 세우는 것이 생존임을, 생존 그 이상의 것이 생존임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 12월 24일, 아라카와(荒川) 하천부지의 떡방아 대회.

“오랜만이예요. 건강하셨어요?” “네. 늘 똑같지요… 뭐…” 눈을 마주치면서도 동시에 피하는 그는 미야시타 공원 점거 투쟁에서 알게 된 오가와씨다. 긴 이야기를 나눠본 적은 없지만 그와 이치무라씨는 늘 그곳들에 가면 있다. “드문드문 와서 미안해요.” 라고 말했지만 마음 속에서는 이런 말들이 소용돌이 쳤다. ‘이번에는 아라강 하천부지네요. 또 “이곳”에서 만나네요. 사람들이 텐트를 치고 모여서 살 수 있는 땅은 점점 사라져가는데… 그렇지만, 반가워요!’ 추방과 배제로 이름붙여진 “이곳”에 오면 즐겁다. 음식이 있고 이야기가 있고 친구가 있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점거 텐트마을이 생길 것이란 믿음이 생긴다.

아라강 야숙지 근처의 고양이집

아라강 야숙지 근처의 고양이집

마지막으로 소개할 “이곳”은 아라강(荒川) 하천부지다. 전통적인 남성 일용 노동자 마을인 산야 근처이자 타테강 근처이기도 하다. 원래 40명 정도가 텐트를 치고 20년 이상 살고 있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10가구 정도가 남아 있다. 국토 교통성(国交省)과 스미다구(墨田区)에 의한 <스미다 자연재생공사(墨田自然再生工事)> 때문이다. “갈대 등의 하천 주변의 동식물을 소중하게 하고 싶다” “자연공원을 만든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실제 목적은 야숙자(野宿者)들을 배제하기 위한 공사였다. 이 공사 진행을 위해 경찰이나 포크레인이 목전까지 들이닥치거나 하면서 공사가 강행되었다. 환경을 위한 공사라는 이 공사는 이곳의 나무들에 번호를 붙여 모조리 베어버렸다. 나무숲 사이에 숨어 있던 텐트들은 갑자기 모조리 드러났고 철조망으로 둘러쳐졌다. 베어진 나무의 흔적은 여전히 남아 있어서, 8번 혹은 9번과 같은 번호가 베어진 나무 밑둥에 달라붙어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한 노동자분은 “아침 저녁으로 그놈들에게 인사하고 집에 들어간다니까. 지켜주지 않아도 되는데 말야”라고 하신다.

아라강 야숙지 근처 고양이집 - 오가와씨가 찍은 사진

아라강 야숙지 근처 고양이집 - 오가와씨가 찍은 사진

이곳에서는 유기견 유기묘 동물 보호 단체분이 함께 활동하고 계신다. 야숙자들과 함께 생활하던 들고양이 들개들로 현저히 그 수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환경을 재생하기 위한 것, 하천과 나무와 동물들과 주민들이 안전하게 살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자연을 파괴하고 동물과 야숙자를 내쫓고 나무를 베어 이 텐트 마을의 자생력을 절단시키는 공사이다. 이 공사로 물길이 하천 부지의 공터로 들어오면 텐트들은 모두 물에 잠긴다. 따라서 이곳을 점거하는 것은 생존을 넘어서 야숙자와 자연의 공생을 위한 점거다.

아라강 주변에서 만난 들고양이

아라강 주변에서 만난 들고양이

아라카와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에는 이치무라씨와 오가와씨가 함게 만든 <고양이텐트(猫小屋)>가 있다. 이 텐트에는 원래 사람이 살았는데 지금은 들고양이 들개들의 차지가 되었다고 한다. 그 텐트에 오가와씨와 이치무라씨가 고양이 그림을 그려 넣어서 <이웃집 토토로> 고양이 버스 모양이 되었다. 그 집 주변에는 검고 우아한 몸짓으로 걸어다니는 고양이들이 잔뜩 있다. 이날에는 떡방아를 찧어 떡을 해먹는 행사가 있었다. 일본식 떡방아를 구경하고 있자니, 공사를 온 몸으로 막았다는 요시다라는 여자 분이 자신의 집을 구경시켜주겠다고 한다. 모두가 함께 만들어준 훌륭한 집이 있었다. 그 안에 여자들 다섯이 들어가 앉자 따뜻하고 아늑했다. 누군가가 교토대의 요시다료의 여자 기숙사네! 라고 했다.

아라강 철조망에 붙은 경고장

아라강 철조망에 붙은 경고장

한쪽에서는 떡방아를 찧고 오뎅탕을 끓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집회와 정세에 대한 이야기를 교환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고, 나무땔감을 때우면서 추위를 달랬다. 처음 와보는 이곳이 낯설지 않았다. 대추리에서 미야시타 공원에서 246 거리에서, 경제 산업성 앞 탈원전 텐트 마을에서, 월스트리트에서 만나고 겪고 나누었던 얼굴들이 그들의 얼굴 위로, 말 위로, 음식 위로, 차가운 공기를 녹이는 땔감의 불빛 사이로 겹쳐지곤 했다.

철조망 안쪽에 있는 야숙자 텐트

철조망 안쪽에 있는 야숙자 텐트

나눠먹은 음식과 나눈 이야기들과 눈빛과 공기들은, 그곳에 무엇인가가 일어났을 때 내 몸에서 반응한다. 아라강 부근에서 나눠먹은 떡과 오뎅, 함께 쬔 불빛들이 없었다면, 나는 2월 1일 타테강 하천부지 봉쇄에 대한 집회에 참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것이 도쿄에서 혹은 내 방에서 텐트 마을을 살게 하는 생존 이상의 질문, “손수건 있니?”라는 질문이다.

* 아나키스트 달력- 이곳에서 저곳을 느끼는 법

구청이 자연생태공원을  만든다는 명목으로 베어버린 나무에 붙은 번호

구청이 자연생태공원을 만든다는 명목으로 베어버린 나무에 붙은 번호

2011년 말, 피해지가 고향인 친구 한명은 ‘忘年會’에 대해 위화감을 표시했다. 3월 11일의 그날 그 장면에 모든 시간과 공간과 감각이 멈추어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망년회라니, 그 시간을 잊자고 하다니, 불가능할 뿐 아니라 말도 안된다는 것이었다. ‘이곳’ 도쿄에 있지만 ‘저곳’ 피해지를 살고 있는 그 친구 앞에서, 나는 우두커니 멈춰 질문해 보았다. 이곳에서 저곳을 느낀다는 것은 무엇일까? 공감이란 무엇일까? 공감이란 이곳에서 그곳으로 달려가게 하는 힘이다. 또한 고통스러운 시공간을 다른 시공간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어야 하진 않을까? 고통 속에서 생존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요구함으로써 생존 그 이상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활동가 요시다씨의 집- 쿄토대 기숙사이름과 같다고 요시다 여자 기숙사라고 불림

활동가 요시다씨의 집- 쿄토대 기숙사이름과 같다고 요시다 여자 기숙사라고 불림

12월 24일의 아라강, 1월 27일의 경제산업성 앞 텐트광장, 2월 1일의 타테강, 2월 6일의 요요기 공원. 그 배제와 추방의 공간들과 만나면서, 나는 ‘이곳’에서 ‘저곳’을 공감하고 힘이 되어주는 방법에 대해서 조금 알게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텐트 마을들에 한번 가 보시라! 그 마을에서 이 연말연시는 결코 배제와 추방의 시간들로만 기억되지 않는다. 아라 강가에서 함께 나눈 음식, 타테강가에서 함께 높인 소리와 주민들의 호응, 요요기 공원의 용기있는 U씨의 발언과 먼 곳에서부터 달려와 준 벗들. 그 곱고 희고 드높게 흔들리는 “손수건 챙겼니?”라는 서로간의 관심과 배려로 기억될 것이다.

새해가 되면 나는 친구들에게 아나키즘 달력을 선물로 보내곤 한다. 어려운 시공간 속에서도 다른 시공간을 만들고 상상하자는 다짐을 담아. 또한 함께 새로운 시간을 만들어가지 않겠냐는 권유다. 비록 멀리 떨어져 있고 혹은 우리가 아직 만나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일본의 야숙자들이 살고 있는 이 반짝거리는 두려움과 희망의 시간들은 2월에서 3월로 넘어가는 시기가 일종의 피크가 될 것 같다. 이 글은 내가 때때로 함께 있지 못할 야숙자의 시공간, 피해지의 시공간에 내미는 아나키스트 달력과 같다.

아라강 야숙지의 밤

아라강 야숙지의 밤

부모님과 언니와 친구들이 있는 한국에 갈 때면, “손수건 있니?”라는 질문은 새삼스레 가슴을 친다. “이곳”에서 내가 회복할 삶의 따뜻함들은 “저곳”에서 “손수건 있니?”라고 새롭게 질문하도록 해주는 부드러운 힘이 되리라 믿는다. 내가 경험한 야숙자 친구들의 마을은 배제와 추방으로 얼룩진 살풍경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늙은 어머니들이 세상으로 나아가는 딸들에게 희망을 담아 건네곤 하는, 곱고 흰 아마포 손수건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응답 5개

  1. 케이말하길

    지영아 잘 지내?
    얼마전에 콜럼비아에서 곽선생 만났는데, 네 생각 나더라 ^^
    일본 원전 2호기 때문에 조금 시끌시끌하던데, 조심하고.
    가ㅡ끔, 연락하자!

  2. 사비말하길

    아….언니 글 짠하다
    얼마전에 일본에서 느꼈던 정서도 스물스물 올라오고…

    영화에 이치무라 상이 나왔었는데 면 생리대를 만들며 수 놓던 장면이 생각나네요. 동대문에서 천 끊어다가 다같이 둘러 앉아서 손수건을 만들고 싶어졌어요.
    ‘손수건 있니?’라고 물었을 때 고개를 저으면 내가 만든 손수건을 선물하고 싶어요!!!

  3. 말하길

    좀 길지만, 하나하나 너무나 소중한 이야기, 땡큐. 들냥이와 야숙자들의 공존재..깊이 생각할 주제.

    • 낙타말하길

      덤선배,

      덧글 너무너무 감사해요.
      글을 보내려고 하면 뭔가 또 심각한 일이 생기고 생기고 그래서,
      글도 늦어지고 길어지고 그랬어요. 미안해요. ^^;

      저에게도 무척이나 소중한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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