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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을 빌미로 한 단속추방 중단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에 들어간 미셸 파울로(39) 이주노조 위원장. 그는 단식 12일째에 토혈증세로 병원에 실려 갔다. 중환자실에서 응급조치를 마치고 다음날 일반병동으로 옮겨야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그는 트랜스젠더다. 서류상 여자로 표기된 그에게 병원 측은 여자병동으로 갈 것을 요구했다. 현재 남성호르몬을 투여 중인 그는 남자병동을 원했다. 양측이 팽팽하게 맞서다 결국 타협하지 못하고 중성지대인 중환자실에 이틀 더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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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윤곽이 흐릿하다. 세 살 때 소아마비에 걸린 후 집밖을 벗어나지 않았다. 학교를 다니지 못했기에 4학년 봄소풍, 중학교 입학식, 고등학교 수학여행의 연대별 서사로 생애를 구성할 수 없다. 어제 같은 오늘, 오늘을 닮은 내일을 살았다. 스물다섯까지 그랬다. 시간의 강물은 설움으로 엉켰다. 방, 마당, 병원 등 공간과 결합된 몸의 기억들, 분리된 사건과 이미지만 아릿하게 떠오를 뿐이다. 파란색 장애인수첩을 처음 받던 날, 오른쪽 아래께 날짜가 반쯤 지워진 내 인생의 한 컷으로 그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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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에게서 멀리 떨어질수록 자기에게로 가까이 간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자기가 속한 사회에서 벗어나야 자기 자신을 냉철하게 관찰할 수 있다고 했다. 이 존재의 비밀을 확대해보면 한 사회에도 해당된다. 한국에게서 멀리 떨어질수록 한국에게로 가까이 간다. 박노자를 보면 그렇다. 그는 러시아에서 태어나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귀화 지식인이다. 한국에서 정규직 취업이 되지 않아 노르웨이로 건너가 오슬로국립대학 한국학 교수로 일한다. 대표적인 저서 『당신들의 대한민국 1, 2』는 지금까지 20여만 부가 팔려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이밖에 지난 십년 간 저술과 강연을 통해 드러난 사유의 편린을 꿰어보면 한국사회와 물샐틈없이 밀착한 그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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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란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남’이 된다는 것. 구성진 트롯 가락으로 접하고서야 고개를 주억거린다. ‘서울이 좋아요’가 ‘강남만 좋아요’가 됐다는 것. 발랄한 포스터를 보고서야 무릎을 친다. 비통하거나 혹은 통쾌하거나.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삶의 비의(悲意)를 발언하는 예술가 덕분에 우리는 삶을 감각한다. 서울시정 홍보포스터로 도배가 된 거리에 웃음의 숨통을 반짝 틔워준 주인공은 젊은 예술가집단이다. 서울대 미대 선후배로 구성된 디자인 창작그룹 에프에프(ff). 지금은 동문의 벽을 넘어 5~10명이 활동한다. 이들은 지난 4월 ‘불법 서울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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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개최와 노숙인 추방은 동시에 일어난다. 한강의 기적과 판자촌 철거가 그랬듯이. 잔치가 성대할수록 출혈도 크다. 삶의 자리에서 내몰린 도시빈민들은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외친다. 이를 군부독재 시절엔 빈민운동이라 불렀다. 반정부세력이었다. 21세기에는 빈곤퇴치운동이다. 나라에서 권장한다. 기업엔 사회공헌팀이 가동되고 지자체가 앞장선다. 기부와 봉사로 종교인은 건물을 세우고 연예인은 이름을 얻는다. 감동한 시민들도 나눔 행렬에 동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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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광수는 제작자 겸 감독이다. 영화제작소 ‘청년’에서 정치색이 강한 16mm 단편영화를 만들다가 1999년 기획과 홍보를 맡으며 영화계에 입문했다. 청년필름을 설립해 등 7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2007년 커밍아웃 이후에는 등 퀴어 영화감독으로도 직접 나섰다. 그 밖에 각종 동성애 운동을 주도해온 인권활동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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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새벽 2시까지 하얗게 밤을 지우던 그. 노래책을 탑처럼 쌓아두고 손끝 부르트고 목청 터지도록 노래하던 청년 소모뚜. 그는 스무 살에 정든 고향을 등졌다. 부모님과 여동생들을 위해 ‘이 한 몸’ 헌신하기로 마음먹었다. “TV가 필요하면 전자제품 가게에 가고 밥을 먹기 위해 식당을 가는 것처럼” 꿈을 찾는 그에게 ‘아시아의 호랑이’ 한국행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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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짝사랑이란 의미를 배운 것은 사람보다 강이 먼저였습니다.” 백발성성한 그가 낙동강에 눈길을 던지며 애틋함을 터놓는다. 하지만 짝사랑의 진짜 불행은 만나고 싶을 때 만나지 못하는 것이라면, 그의 짝사랑은 복되었다. 언제 찾아가도 낙동강은 옥빛 물결 넘실대며 너른 품으로 맞아주었으니까. 그렇게 낙동강 1300리 물길에 ‘그 집 앞’ 드나들듯 하기를 36년 세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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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융희 선생은 연구공간 수유+너머와 99년부터 인연을 맺고 지속적으로 공부해왔다. 연구실 주방에 갖가지 맛난 음식을 남몰래 가져다놓아 ‘우렁각시’로 통한다. 조용히 베풀고 사라지는 손. 그 고마운 손으로 6080의 사는 이야기 을 위클리수유너머에 연재 중이다. 4월 14일 볕 좋은 날, 편집팀은 경기도 연천군 신망리 김융희 선생 댁으로 봄 소풍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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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결이 벗겨지고 손때가 묻은 둥그런 밥상. 생선조림과 묵은지찌개, 호박전, 가지나물, 겉절이 등 9첩 반상이 올랐다. 푸짐하다. 게다가 3월 하순 다순 햇살이 비스듬히 밥상 위로 쏟아지니 잡지의 화보처럼 입맛을 돋운다. 첫술을 뜨며 두런두런 이야기 오가고 젓가락이 스친다. 반찬이 금세 동났다. 밥 한 그릇 뚝딱 비운 식구들은 가위바위보로 설거지 당번을 정하느라 왁자지껄 소동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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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왔을 때 엄청났죠. 말이 공부방이지 골목을 막아서 천막 치고 주방으로 쓰고 있었어요. 애들은 시커멓고. 첫날에 5분 정도 앉아 있다가 급한 볼일 있다며 도망치듯 나왔어요.(웃음) 다음 날부터 근무했는데, 제가 아이들에게 처음으로 한 말이 이랬대요. 너희들 정말 안 되겠구나!” 구로동 일대에 철거가 한참이었다. 어수선한 틈에 아이들은 방치됐다. 어느 날 집에 가보면 아이만 두고 가족이 다 이사를 가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아이들은 자주 싸웠다. 거칠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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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22)은 겨울방학 동안 영어 학원을 다니고 있다. 10시부터 12시까지 한 타임 듣는다. 학원이 끝나면 12시부터 4시까지 카페에서 숙제를 한다. 세미나 관련 책 읽기나 글쓰기 등. 어떤 날은 아르바이트를 한다. 오후 다섯 시 반에 귀가해서 퇴근하는 엄마를 기다렸다가 같이 저녁밥 해먹고, 드라마 한 편 보고, 그리고 영어단어 좀 외우려고 책을 뒤적거리다가 잠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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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 모 일간지 일면 헤드라인은 이러했다. 2000원에 주인 되는 집! 주거난에 허덕이는 이들을 단박에 유혹하는 이 제목은 서울 용산2가 해방촌에 있는 대안적 주거공동체 ‘빈집’을 소개한 기사였다. 빈집은 하루 2,000원 이상의 분담금만 내면 누구나 머물 수 있는 일종의 게스츠하우스(Guests' house)다. 하루를 묵는 것도 몇 달을 머무는 것도 자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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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역’이 ‘용산참사역’으로 변한지 1년이 흘렀다. 삶을 통째로 빼앗긴 그들은 삶이 와해된 바로 그 자리에서 억척스럽게 살아냈다. 시커먼 연기 머금은 남일당 건물은 분향소로, 고 이상림씨가 운영하던 레아호프는 커피향 그윽한 카페이자 갤러리와 미디어센터가 들어선 복합문화공간으로, 고 양회성씨 가게였던 삼호복집은 유가족 살림집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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